어떻하다 보니 졸음으로 꾸벅거리기만 하였을 뿐 넘겨져야 할 책장은 아직도 그 자리이다. 다행히 펜을 들고 있지 않았던지 그림은 그려져 있질 않다.

얼마전에 수성펜을 지면에 콕 박아 놓고 있었던가 보다. 많은 페이지가 잉크로 배어져 점점으로 얼룩진 책이 되고 말았던 것을 보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또 졸음이 쏟아진다.

허리를 다시 곳추 잡고 두 발도 움직여 보고는 들여다 본다. 소리도 내어 본다. 어제도 졸다가 그냥 제자리이고 말았는데 이러다간 다가오는 시험이라는 관문은 이런식으로 흘려 보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침 벨이 울린다.

동네 어귀를 나가야 했다. 옷깃을 한껏 여미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몸은 추위에 부딪치면서도 맘은 평안해져 온다. 노랗기도 한 커다란 물체가 빨리도 달린다. 그러더니 순간 구름속으로 감추고 마니 그것은 흐르는 별똥별이었다.

비행기인 줄만 알았던 것이 커다란 별이었으니 분명 인물도 큰 사람이 가는구나 하며 여유스러운 듯이 걸음걸음을 옮겼다. 가로등도 같이 하며 동네 끄트머리의 이웃에 들러서는 돌아오려는데 차불빛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찬공기 속에서 비켜 서 있으려니 옆에 와서 멈춘다. 먼 이웃이 귀가 하는 길에 동행하고자 한 것이다. 돌아 가는 길은 이렇게 해서 가게 되었다.

오늘은 왜 혼자냐고 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원하던 공무원 시험에도 붙었기에 축하 한다고 거듭 얘기 하건만 상대는 반응이 없다.

....몰랐어요?.
순간 내가 말이 없어진다.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했지만 몇 달 전에 들었던 사고소식이 장본인과의 얘기였다. 옆의 의자에 놓여 있던 금방 사가지고 가던 애기들의 색연필과 연습장이 더욱 가슴을 두드리게 한다. 한참 물오르는 젊은이의 앞에 어째 이런 일이...

아무런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가만히 호흡으로 맘을 가눈다. 다정하게도 지내던 그들의 모습만 스쳐간다.

두 손은 눈물을 훔쳐 내리며 야밤에 해오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잊으려고 애쓰고 또 젊음도 펼쳐 보겠다며 다행히도 다짐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어렵기도 한 인생살이에서 이 젊은이에게도 어느날 희망은 찾아 올 것이라 위로하며 돌아섰다.

졸음 앞에서 힘들다고 했더니 또 다르게 겪고 있는 사람은 이겨내며 설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진정시키던 가슴은 고요하던 밤에 어~ 어~ 하며 놀라운 꿈속여행을 하다가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아직은 먼동을 잉태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그만 일어나라고 했나 보다 하며 문을 돌아보니 한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달빛속에 있던 나무가 문살에 그대로 비치고 있던 것이었다.

스위치를 켜니 금새 사라지고 만다.

몇 시간 전에 앉아서 졸았던 책상이 눈에 뜨인다. 부지런히 애용해 주지 않았는데도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그놈의 졸음도 인생인 것인지 정말 졸음 앞에선 쉽지가 않다.

야학으로 젊음을 거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응원을 보낸다.

졸음이여!,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해보는 만학의 생도를 위해서 조금만 더 참아주지 않으련?, 조금만 더?

펼쳐 놓기만 했던 책장 옆의 모과는 솔솔 풍기며 불빛에서 깜빡거리고 있다.

(보령도서관 주부문학모임 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