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 중 하나는 단연코 <심청전>이라 하겠다. 심청전은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민간신앙 등 모든 종교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다만 우리사회가 유교와 불교, 도교, 민간신앙이 쉽게 서로 어울릴 수 없는데도 심청전에서는 담겨진 사상이나 각기 다른 종교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모순이나 갈등을 보이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소리와 생각, 이념적 차이도 우리 사회가 서로 극복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심청전의 백미인 심봉사 눈뜨는 장면이다. 심봉사가 눈을 뜨자 잔치에 참석했던 봉사들이 일시에 눈 뜨고, 나아가 온 나라의 봉사들이 다 눈 뜨고 대명천지에 눈먼 짐승들까지도 눈을 떠 밝은 세상 되었다는 얘기다. 참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한 사람이 눈을 뜨므로 온 세상이 다 눈을 떴다는 이야기, 이 심청전의 신원 미상의 작가는 어쩌면 사회 지도층 몇 사람, 기득권을 가진 얼마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백성이 눈먼 조선사회의 정치, 경제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결국 모든 백성들이 장님이 아닌 눈 뜬 존재로서 자기를 들어내고 제소리를 냄으로써 모든 세상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공존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심봉사 눈뜨는 장면을 기록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도층이 먼저 국민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눈뜨게 하기보다는 여전히 편가르기와 힘겨루기라고 하는 구태에 사로잡혀 비전은 커녕 국민들을 장님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지역만 해도 시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충남도청 유치, 관창공단 활성화, 보령신항 건설, 한국중부발전(주) 본사이전, 대천해수욕장 특급호텔 유치‘ 등 크고 작은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시민들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힘을 기울여도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데도 시 수뇌부에서는 하찮은 일로 고소·고발이나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책사업이든 대형 프로젝트든 진정 시민들의 꿈과 염원이 무엇인지, 시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한걸음 물러서서 대타협을 이루는 미덕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 지역의 희망은 그 만큼 없으며 시민들은 지도층에 대해 불신하고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 무엇보다도 소수가 아닌 전체의 성공과 배분적 정의를 원하고 있다. 나 혼자 눈 뜨고 나만 잘 살면 되고, 내 뜻과 내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심봉사 눈뜸으로 온 세상의 봉사가 다 눈 떠 밝은 세상 되듯이 보령시민,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함께 눈 뜨고, 그 눈뜸으로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2005. 을유(乙酉)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독일 월드컵과 지방선거 등 굵직한 현안들이 2006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묶인 매듭은 모두 풀어버리고 대립과 반목 보다는 화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병술(丙戌)년을 맞이하자. 심봉사가 눈을 뜨므로 밝은 세상이 이뤄진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화합과 상생 그리고 희망의 새해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