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움츠렸다. 열린사회라서 그런가. 달라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80년대식 집회와 시위문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법과 질서가 제자리를 찾을 때도 됐지만 현실은 죽봉과 쇠파이프, 그리고 몽둥이와 발길질이 난무한다.

민주주의를 제도화해 선진질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선진한국과 통일한국을 만들어 나가야 할 이때 전진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우리 내부의 장애물이 어수선한 집회와 시위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일체의 불법 폭력집회와 시위는 금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빈발하는 폭력적인 집회와 시위는 유감이다. 그러나 이 유감에도 이해는 따른다. 추곡수매제가 사라지고 수입쌀 관세유예화에 대한 국회비준이 이뤄져 매년 수입하는 쌀 규모가 늘어났고 게다가 가공용으로만 사용하던 수입쌀이 이젠 시판까지 된다고 하니 자유시장에 대책없이 내던져진 생존권의 문제에 부닥친 농민들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따라서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두고 점잖게 집회와 시위를 하라는 것 자체가 동의받기 어려운 한가한 주문이다.

게다가 농민들이 시위현장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까지 이른 것을 농민들만 탓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최근 실패한 농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고, 이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에 항의하기 다소 격앙된 집회, 그리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그런데 최근 농민단체의 집회와 시위를 대하는 정부, 특히 경찰의 태도를 보면 여러 가지 ‘무리’가 느껴지는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헌법적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너무 손쉽게 ‘불법화’시킨다는 점이다. 물론 경찰로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그 자의적 판단기준을 제3자인 국민이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의 편의적인 해석으로 헌법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경찰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설령 특정 집회와 시위가 심각한 국가질서 전복이나 파괴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생존권의 문제를 호소하는 농민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경찰의 태도는 국민기본권을 너무도 쉽게 무시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처럼 되풀이되던 경찰의 무리한 시위진압은 지난 15일 여의도 농민집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보면, 한마디로 시가전을 방불케 한 경찰의 공격적인 진압은 도를 넘은 진압이었다. 농민들이 국회로 향하려다 경찰저지선에 밀려 다시 여의도공원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갑자기 경찰이 여의도 공원까지 쳐들어가 집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일대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고 고 전용철 씨는 이 날의 경찰진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지금은 군부 독재시대가 아니라 법과 질서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시대다. 그런데 법과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할 국가공권력이 과거의 폭력적인 진압유혹에  말려드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더구나 농민들이 헌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수 차례의 집회원천봉쇄와 이어지는 농민들의 죽음 앞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강경진압으로만 다스릴 수 있다고 본다면,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경찰은 더 이상 시간끌지 말고 고 전용철씨의 사인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이번의 공격적인 진압지시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밝히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떨어진 경찰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시위하는 국민이 경찰진압으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