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면서 건강하여 다른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인 것 같다. 때로는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얻었을 때 이웃과 조금씩 맛보는 것도 혼자 두고두고 아껴가면서 먹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다. 무더운 날이 연이어 계속 되니 다 벗은 발인데도 신고 있는 샌달이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검정고무신과 꽃빠구신 (꽃신)을 신었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큰 맘 먹고 예쁜 꽃신을 사 주시면 한편으로 좋으면서 불평을 한 적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검정고무신은 두껍고 튼튼해서 신 뒷꿈치에 힘을 주어 뒤집으면 슬리퍼처럼 되어 끌고 다닐 수도 있고 모래 위에서는 붕붕 자동차로도 변신 시킬 수 있는데 꽃신은 약해서 뒤집어 슬리퍼도 만들 수 없고 쉽게 더러워져서 여간 조심스럽고 멋 내는 것 같아 쑥스러웠다. 그래서 검정 고무신 신은 친구에게 돌 뺏기(공기놀이)를 해서 한번 씩 신을 바꾸어 신기도 했다.

어느 마음 예쁜 시인이 “선물”에 대해서 만나는 사람에게 아주 조그만 책갈피,손수건 등을 준비하여 선물을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았을 때 그것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어렴풋이 저녁노을이 주황빛으로 하늘을 물들였을 때쯤인가? 나에게 이모라는 분이 꽃신을 신으라고 선물을 보내 주셨다.

고마운 마음이 문뜩 들어서 어른들께 여쭤보면 외갓집에 사촌 큰 이모라고 하셨는데 한번도 뵌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러던 몇 해 전에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 친정에 가게 되었다. 온 식구가 모여 친척 삼촌들은 행사 프로그램을 짜고 연습을 시키고 아주머님들은 푸짐한 음식 만들기에 분주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분이 계셨다.

그분은 중년의 하얀 얼굴빛 이였으며 고음의 목소리를 갖은 분이고 궂은일을 나서서 하시 길래 나는 그 분 가까이 다가가 “저어 누구세요?” 여쭤 보게 되었다. 그분은 “나 큰 이모다. 내가 너에게 덧버선을 털실로 짜서 작은 이모에게 보냈는데 기억 나니?” 하셨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놀라웠다.

그분은 오래 전 나에게 털 덧버선을 선물로 주시고 나는 그것을 예쁜 꽃신으로 받아 항상 잊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정말 보고 싶었던 분을 뵐 수 있어서 기뻤다. 그분과 같이하는 시간 동안에 열심히 일을 하시면서도 행사 절차에 찬송가 중 “어버이 사랑” 노래가 특송 으로 꼭 들어가야 된다면서 우리 부부에게 지도를 해주셨다.

일을 잘 치르고 헤어지고 난 후에도 그분의 모습이 좋은 느낌으로 되새겨 졌는데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잊지 않으려고 또렷이 보고 왔는데 지난 해 인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하더니 백혈병에 걸려 살아서는 볼 수없는 곳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을 수 있었다. 그분이 가시고 난 후 작은 이모에게 그분에 대해 조금 더 들은 이야기였는데 가슴이 아팠다.

몇 십 년 전에 큰 이모는 결혼을 하시고 제주도에서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며 얼마 안 있어 이모부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어느 바위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아주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세가지 소원을 빌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으며 사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의 삶을 사셨다고 하였다. 그분의 모습은 분명 하얀 박꽃이셨다.

하나님을 무척이나 의지하며 맑은 목소리로 찬양하면서 힘겨운 삶을 때로는 위로 받으셨을 것이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혹시라도 흠을 남기고 갈까봐 모든 준비를 다 하시고 하얗게 가셨을 그분을 그릴 수가 있었다. 나의 삶에 또 다른 믿음의 안내자가 되어 줄 것만 같은 소망을 주셨는데…!

영원히 꽃신으로 다가오신 그분을 생각 하면 남은 삶을 신실하게 살고 싶은데 봉사의 삶을 살고 싶은데 아직도 주저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음속에 약속을 찾아 어서 일어나야겠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 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