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는 영어 알파벳의 스물네번째 글자다. 수학에서는 미지수의 기호를 나타내며, 이 뜻에서 발전하여 미지, 미결의 사물이나 사건 또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말로는 ‘모(某)’ 또는 ‘아무개’라는 단어가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대로 수학에서 미지수를 X라고 쓰고 있어서 그런지 일상생활에서도 X라면 일단 ‘미지의 그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X는 원래 ‘미지의 그 무엇’이라고 길게 표기했었는데 그렇게 표기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았던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어느날 ‘다음 논문에서 미지수는 X, Y, Z로 표기한다’는 주석을 달기 시작하면서 X가 미지의 그 무엇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X-파일이란 단어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불법도청을 통해서 얻은 내용들이 정계, 재계, 언론계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재벌과 권력의 검은 고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삼성과 총수 이건희 회장이 서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그는 많은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특히 그동안의 재벌의 적폐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겐 그는 우상이었다. 정치권력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기업경영에만 몰두 신기술 개발과 경영합리화로 오늘의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그의 성실한 기업가 정신에 대한 신뢰의 표현인 것이다.

여기 삼성의 경영원칙이자 오늘날 삼성인이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룰로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직접 쓰고 선포한 ‘삼성헌법’의 한 대목을 보자.

“어떤 일을 하다가 부득이 법률과 도덕 중에서 한쪽을 위반할 수 밖에 없는 경우를 만나면 나는 법률을 위반할지언정 도덕은 위반하지 않겠다. 이것이 내 인생관이다. 도덕을 제대로 지키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인간미와 도덕성이 결여된 조직은 결코 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 인류에 도움이 되는 조직이라야 영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안기부 X-파일’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음흉한 모습을 본 많은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더욱이 총수에 대한 한없는 신뢰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땀흘려온 삼성맨들이 받은 상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재벌이 자진해서 특정 정치집단을 위해 언론사 사장까지 동원해서 검은 돈을 은밀히 전달하는 상황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타락한 재벌, 언론, 정치인들의 모습은 절망적이다. 돈에 취하고 권력에 눈먼 이들에게 신성한 국민들의 주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말인가.

정도는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지역에도 X-파일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최근에 발생한 ‘--조선소 X-파일’ ‘-- 주택 X-파일’ ‘-- X-파일’ 등등 이미 시중에 회자된지 오래고 지금도 그 의혹이 시원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다. 물론 얼마전 연예계를 뒤흔든 X-파일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뜬 소문을 마치 사실인냥 포장해서 여러 연예인들이 곤란을 겪은 일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X-파일이 문제가 아니라 X-파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 ‘불법도청 X-파일’ 이 정ㆍ경ㆍ언의 유착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이제는 어디까지 파헤쳐야할지 걱정마저 든다. 정말 앞으로는 더 이상의 X-파일이 없는 밝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