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깎아내리기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박대통령의 시해날과 다음날 새벽까지를 다룬 이 영화는 시사회 전부터 박대통령의 아들인 지만씨가 `고인의 명예훼손’을 들어 영화제작사를 상대로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조건부 상영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단 개봉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자체로 봐야한다’는데 반해, 일부에서는 `정치적 의도’라는 상반된 의견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임상수 감독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고 출연진들 역시 `부담스럽지만 영화는 영화로 봐 줬으면 좋겠다’는 반응이다.

이에 영화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창작 활동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결정”이라며 강력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한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은 논평을 내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억압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로, 향후 한국영화 창작에 날카로운 족쇄를 채울 수 있는 위험한 결정이라며 온전한 창작물에 대한 국민들의 볼 권리를 사법부가 제한하는 시대착오적인 검열 행위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실존인물에 대한 영화화를 놓고 명예훼손 시비에 휘둘러진 적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소설 이휘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다.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유족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낸 가처분소송에서 “공적 인물로서 어느 정도 생활상이 공표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한 전례가 있어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위헌 요소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달리 지난 미국 대선 직전에 개봉돼 화제를 뿌렸던 다큐영화 ‘화씨 911’이 공개됐을 때 미국인들의 반응은 눈여겨 볼만하다.

미국의 보수세력과 부시정권을 비판해온 저널리스트 겸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특유의 유머와 논리로 시종일관 부시의 무능을 꼬집는다. 또한 뉴스와 직접 촬영한 장면 등으로 이루어진 정확한 자료를 적절하게 편집해,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본 부시 대통령은 노발대발하며 대단히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대응은 없었다.

예술성이든 정치성이든 영화에 대한 최종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 하고, 그에 대한 최종 책임은 감독이 져야 한다. 그런데 아주 기본적인 이 원리를 무시하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위질을 한 사법부는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영화사에 또 하나의 부끄러운 족적을 남겼으며, 이는 앞으로도 사법부의 진정한 권위와 위상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 그 누구보다 사법부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 잘려나간 3분 50초 분량의 내용을 볼 권리를 관객들에게 돌려주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