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면서 행복한 이유 중에 하나는 가까이에 그녀가 살고 있음이다.

그녀에게선 늘상 초록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마치 텃밭에서 갓 뜯어올린 상추를 소쿠리에 담아놓은 모습처럼.

사치부릴 줄 모르고 멋부릴 줄 모르는 그녀지만 내겐 최고로 아름다운 그녀! 까르르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도 덩달아 바람난 사람 마냥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 그저 막연히 나이를 먹어서는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인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서 순수를 떠나보낸 그 자리엔 너나 할 것 없이 닳고 닳아빠진 속물근성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몇 년 전 취미활동을 시작하며 천사 같은 그녀를 알게되었다. 내겐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녀의 집 안팎엔 그녀를 닮은 듯한 수많은 야생초와 내가 좋아하는 옛것들이 참 많았다. 짚신, 갈퀴, 맷돌, 지게, 항아리….

그 중 망태기에 담겨 벽 한쪽에 매달려 있는 개망초 꽃은 보기만 해도 정겹기 그지없다.

5분거리에 있는 집을 바삐 오가며 화초도 나눠 키우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는다. 토요일엔 함께 김치를 담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을 재우기도 하며 지금껏 돈독한 우정을 키워나가고 있다.

조금은 정신없이 바쁠 오전 시간에 잠깐 짬을 내어 날마다 모닝커피를 함께 마시는 우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늘 바쁘다. 하는 일이 많은 이유로 날마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듯 보여진다. 그렇게 정신 없이 사는 그녀지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와 주는 그녀다.

얼마 전 얼굴이 얼얼할 만큼 몹시도 추운날 겁에 잔뜩 질린 모습으로 난생처음 내시경을 하러 가는데, 그녀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친친 동여매 주고 손에 끼고 있는 빨갛게 코딩된 목장갑까지 벗어서 내 손에 끼어주었다. 그리고 등 뒤에 나를 태우고 힘겹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달렸다.

친구란 인디언말로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더니 딱 맞는 말이라 생각됐다.

그 날 긴긴 시간동안 떨고 있는 나를 묵묵히 곁에서 지켜준 그녀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아프거나 우울하다 싶으면 불러들여 밥 해주고 돌침대 온도를 있는대로 올려놓고 비디오를 틀어주던 그녀.

편안함에 나도 몰래 스르르 잠이 들라치면 밖에선 소란스러운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모습은 영락없이 딸의 고단함을 이해하며 단잠을 깨울까봐 염려하는 친정엄마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녀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별로 도움이 못돼주는 내가 미안해 할까봐 되려 맘고생이 심했던 그녀. 베풀었던 그 많은 것은 모두 잊고 그저 받은 것들만 기억해 늘 고맙다 말하는 그녀.

진정으로 사람을 위할 줄 아는 그녀를 닮고자 날마다 난 무던히도 애를 쓴다.

언제고 그녀가 지치고 힘들어 할 때면 내가 기꺼이 다가가 등을 내밀 것이다.

추위를 지독히 싫어하는 그녀가 그 추운날 내게 따스함을 다 벗어주었듯 나도 남김 없이 그녀에게 모두 줄 것이다.

언제든 가장 따뜻한 아랫목을 내주고 온기가 가시지 않도록 밤새 군불을 지피고 또 지필 것이다.

먼 훗날까지 우리 인연 계속될 수 있도록 지금처럼 가까이서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헛헛할때면 언제든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너무 멀지 않은 곳에 그녀가 있었음 좋겠다.

<보령도서관주부문학회보령예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