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 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뜻의 `당동벌이(黨同伐異)’를 뽑았다.

교수신문은 필진과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교수 16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04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정리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19.8%가 이 고사성어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꼽힌 것이 ‘지리멸렬(支離滅裂)’과 ‘이전투구(泥田鬪狗)’였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지난 한 해를 ‘증오(憎惡)’로 압축했다.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이런 표현들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겪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물론 패싸움을 가장 현저하게 벌인 곳은 정치판이다. 여당과 야당은 농성과 독한 말로 맞서지 않았던가. 그러나 ‘당동벌이’는 정치판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회도 이리저리 찢기면서 수없이 대립했고 두 편으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진보와 보수, 서울과 지방, 노(勞)와 사(使)가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북한 핵문제 등 모든 문제에서 두 편으로 갈라져 토론장과 집회장소 등에서 싸웠다. 다원주의사회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한편에서 갈리더라도 다른 데서는 만나고,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다음에는 화끈하게 화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싸우고 또 싸우며 끝없이 싸웠던 것이다.

우리 지역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지도층의 경우 귀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내 편이고 동지이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내 편 네 편으로 갈라놓고 음으로 양으로 짓밟아 왔다.

그러나 올 해는 달라져야 한다. 변하지 않고서는 오늘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만이 역사의 지진아가 되어 언제까지 ‘극단의 시대’에 갇혀 있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풀뿌리 지방자치시대의 동반자이며 일꾼임을 자임하는 <보령신문>도 금년 한 해 동안 시민, 독자 그리고 출향인 여러분과 함께 지역사회의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데 더욱 힘을 쏟아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속에 같이 희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따뜻한 지역 울타리를 더불어 엮어 가겠다.

작년에는 ‘당동벌이’에 열을 올렸다면 새해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에 ‘올인’해 보자고 제안하고자 한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의 얼굴이 나하고 다르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까. 성격이 느린 사람은 빠른 사람하고 살아야 재미있고, 외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과 함께 살아야 조화를 이룬다.

무한한 흐름 속에 눈금을 그을 줄 아는 것은 인류의 지혜이다. 새해에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음’을 추구하는(和而不同) 희망있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