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웅천에서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웅천읍민 화합한마당 큰잔치’가 그것. 웅천산업페기물매립장 증설 문제로 2년 가까이 전쟁 아닌 전쟁을 벌려오던 웅천읍민들이 충남도의 반려처분에 따라 보령시가 이 사건의 종료(?)를 선언함에 따른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페기물매립장 증설을 반대하며 시위를 하던 웅천주민들은 ‘폭도’ 라는 표현으로 매도 당하기도 했고, 또 갖은 협박·공갈, 심지어는 실정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되기도 하면서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투위’ 도 해체하고 갈등과 반목을 화해와 화합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웅천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축제 한마당이었다.

1992년, 안정효씨의 소설을 정지영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그해 ‘대종상’, ‘백상예술상’ 등 각종 상을 싹쓸이했던 「하얀전쟁」이라는 영화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병사가 겪는 후유증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베트남전의 현대사적 의미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자신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월간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며 살아가는 한기주(안성기 분)는 그럭저럭 살아온 세월 속에 중년이 되었고, 전쟁의 후유증을 앓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부대의 전우였던 변진수(이경영 분)로부터 느닷없는 전화를 받는다.

변진수는 전투 중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던, 조금은 멍청한(군대 용어로 고문관) 병사였다. 그런 그가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전화만 걸어오고 그의 주변 만을 맴돌 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변진수의 행동은 한기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점점 베트남전의 악몽으로 내쫓기게 된다.

수백명의 베트공을 상대로 육박전을 벌이면서 죽어간 전우들, 어둠 속에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베트공과의 죽음의 결전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전우들은 하나 둘 씩 쓰러져가고 47명의 소대원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7명 뿐. 그리고 한기주는 귀국을 했고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죽음의 계곡에서 살아 남았던 변진수와 만나게 된 것이다.

한가로운 결혼식장의 한 모퉁이에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변진수의 이마에 권총을 겨눈다. 방아쇠를 당기고 그를 쏴 죽이는 순간 변진수의 전쟁을 하얗게 끝맺어 주지만 한기주는 우리의 대표적 개인이 되어 그 전쟁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많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채 웅천산업페기물매립장 문제는 종결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종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잘못된 행정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고, 똑 부러진 사과 한마디없는 두루뭉수리한 종결에 대해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매립장 증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주민들의 전쟁은 「하얀전쟁」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가 하루 속히 아물어져 지난 일을 거울 삼아 이제는 갈등과 반목을 넘어 화해와 화합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