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셔야 사는 여자
 “구슬만 하게 쪼그라든 뇌가 핀볼 게임처럼 두개골 양쪽 모서리에 팅팅 부딪히고 있다.” 책의 첫 장면이다. 숙취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 저자 클레어 풀리 자신이다. 그녀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 회사의 능력 있는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엄마의 삶은 너무 힘들다. 육아에 고군분투하는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술을 마신다. 문제는 알코올에 깊이 의존하게 된 그녀의 삶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 어떤 상황에도 대처하지 못하게 되었고 저자의 빛나던 삶은 성장을 멈추고 후퇴하기에 이른다. 클레어는 자신의 문제를 깊이 깨닫고 금주 블로그를 시작으로 술을 끊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일 년 동안 그녀가 어떻게 금주를 지켜나갔는지에 대한 다이어리다. 놀라운 것은 이 첫 책을 바탕으로 소설 『진실 프로젝트』를 발표하는데 29개 언어로 번역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저자는 음주가 사회생활의 윤활유에서 자가 투약으로 얼마나 쉽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한다. 스스로를 알코올 중독자로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 의존도가 심각했다는 것을 금주를 통해서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금주는 마치 사회생활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축하, 긴장, 두려움, 지침 등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술로 해결하려는 것은 쉽고 빠른 방식이다.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 와인 마녀와의 전쟁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금주는 상상할 수도 상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클레어도 마찬가지였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을 재운 후에 마시는 와인 한 병이 뭐 어떻다고. 아이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주말에 친구들과 즐기는 와인 한 병이 왜 지나친 건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클레어의 1년을 들여다보면 알코올 의존적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찌꺼기들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삶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클레어는 궁금했다. 술을 먹어서 힘들어진 건지 힘들어서 술을 먹은 건지. 금주를 하면서 명확해진 사실은 삶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는 것이다.
유명 대학 출신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뤘던 멋진 여성 클레어는 점점 사라져갔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자신이 없고 삶은 쪼그라들고 있었다. 더 이상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점점 지쳐간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의 음주는 내일의 행복을 당겨쓰는 것이다. 경미한 즐거움을 다음날의 엄청난 우울과 바꾼 셈이다.” 잠깐의 즐거움 뒤에 기다리는 고통에 대한 표현이다. 다음날 그녀의 도파민은 고갈되고 머릿속을 울리는 지옥 같은 독백이 괴롭히는 아침을 매일 맞이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1년간의 금주는 또 다른 고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매일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고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동화되어 함께 울고 웃고 있었다.

■ 삶의 기적을 공유하자
 클레어는 금주 365일이 되는 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난 12개월 동안 한 바퀴를 빙 돌아 원래 자리로 온 느낌이다.” 그녀는 1년 동안 자신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냈다. 잃어버렸던 원래 모습이 드러난다. 친절하고 용감하고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자신을 다시 찾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에서 소통했던 독자들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수많은 여성 동지들. 그런데 안타깝게도 클레어는 그렇게 성장하고 자신을 되찾고 있었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좌절과 역경이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이 온다.
자신의 삶에 당당하지 못하고 늘 와인병 뒤에 숨고 피하던 클레어는 이제 용감해졌다. 술 취한 눈으로 바라보기에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지만 그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나도 마음에 새긴다. 클레어의 블로그를 직접 찾아 몇 편을 읽어보았다. 댓글 속의 여자들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기르면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얻어터지지만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 삶이 무언가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도록 발버둥 치고 있다. 클레어의 다이어리는 분명 많은 여성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줄 것이다. 내 삶의 변화가 두렵거나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클레어의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용기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