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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지수 지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 익는 마을 유 하나
2022년 01월 25일 (화) 11:06:0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스승의 은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제목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선생의 그 기나긴 삶의 마지막엔 어떠한 생각들이 담겨있을지 기대 반 숙연함 반의 감정으로 책을 펼쳤다. 이 책의 북트레일러가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그 안에 선생의 모습은 몹시 야위었지만 한마디 한마디 꼭꼭 씹어 전달하고 있었다. 대학을 은퇴하고 암 투병으로 선생의 강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할 즈음에 김지수 작가가 찾아왔다. 언젠가 한 번쯤 몇 사람이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강의를 해보고 싶었던 선생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학생들의 숫자가 많아서, 격식이 있어서 삼가던 말을 다 털어내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수업을 김지수 작가가 책으로 엮었다.
 “생의 길목마다 어김없이 돌부리에 걸려 머리가 하애지는 내가 이어령이라는 스승을 만난 건 축복이었다.” 김지수 작가의 말에 나도 내 스승이 보고 싶어 지나간 추억에 잠시 잠겨보았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작가는 매주 화요일마다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대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갔다. 인터뷰의 디테일한 주제는 정하지 않고 그날 그날의 상념을 꺼내 놓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에 장마다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다채롭다. 김지수 작가 특유의 감성은 이어령 선생의 목소리에 더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한 편의 시와 수필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선생의 말을 척하니 알아듣고 반응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인터뷰였을 것이다.

■ 죽음을 이해하다
 “공포는 없으신지요?” 작가는 현재 암 투병 중인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죽음을 피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 속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용감히 말하고 있는 선생의 답변은 이렇다. “자신은 없네.” 그리고 최초로 죽음학을 연구한 ‘퀴블러 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죽음에 관한 강의를 하고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정작 자신이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었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죽음 앞에서 오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선생은 자신에게 달려든 호랑이와 싸우지 않고 같이 살아가려고 한다.
 선생은 호랑이를 길들이기 위해서 고통을 관찰한다. 그 관찰의 방식은 글쓰기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서 기가 막힌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은 머릿속을 지우며 공백만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었다.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은 삶의 고통이나 시련으로 바꿔 생각해 봐도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된다. 철창 밖을 나온 호랑이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머릿속이 다 지워지고 공백만이 남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생은 자신의 공백을 작고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나가고 있다. 눈으로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 안달복달 살다 보면 생각과 시야는 좁아지고 점점 더 거창한 것들만 쫓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가벼워져 많은 것을 담을 수 없기에 눈물도 딱 한 방울이라는 선생의 말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 길을 잃어버린 삶을 선택하다
 살면서 유연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념은 강해지고 목표에 집착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뚜렷한 목적을 정해놓지 않고 과정 속에서 만나는 기회와 결과를 즐기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선생은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곳에 정주하지 않고 끝없이 방황하고 떠돌아다녔다는 선생의 삶에서 ‘미쳐서 살고 깨어나니 죽었다’는 돈키호테가 보인다. 선생은 잠들어 있는 유목민의 기질을 깨우고 다시 길을 잃어도 좋다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질서와 안정 속에서 남들처럼 살지 말고 자기만의 동력을 갖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평생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외로운 거라고 말한다. 선생은 타인과 내내 껄끄럽고 소외되어 외로웠다고 한다.
이어령 선생님의 삶의 지혜와 조언 속에는 어조는 강하지만 토닥임의 부드러움이 함께 묻어있다. 그저 파뿌리로 살아도 정말 괜찮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파뿌리 이야기는 너무나 강력하다.) 책 속에서 다루는 그 많은 주제를 아우르는 예시와 비유는 감탄을 넘어선다. 어떻게 살면 저런 이야기들이 대화 속에서 녹아 나올까. 선생이 가진 삶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아름답고 광활하다. 선생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바다의 파도와 촛불에 비유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선생은 어디론가 돌아가겠지만 마지막엔 이렇게 우리를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이 말은 오랫동안 내 가슴을 울렁이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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