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잔설이 군데군데 쌓여, 비루먹은 당나귀의 털 빠진 몸둥어리 같은 들판을, 어느새 새파랗게 초록으로 물들여 놓았다.
땅 속의 어린 생명들이 모두 깨어나, 제나름의 연중 계획표를 분주히 점검하는 동안, 立春榜으로 기력을 되찾은 햇볕은 흥이 나서 벌떼같이 잉잉거리며 하늘 가득히 내리고 있었다.
한사코 높이 뻗어 나간 나무들도, 움츠러 들었던 억울한 세월이 이미 끝났다는 듯, 비수같이 시퍼렇게 날을 세워 으르렁거리며 겨우내 횡행하던 바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나무들은 즐겁게 출렁거리는 먼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굳게 뿌리내린 대지의 정기를 시련에 견딘 수피 속의 모세관으로 빨아올려 높은 가지 끝에서 이쁘게 움트는 생장점으로 햇빛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토양의 미생물들이 썩지 않는 비니루까지 제 몸으로 부지런히 분해하여 地上의 植物들을 따뜻하게 난방해 주면, 가녀린 연두색 새싹들이 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을 하나씩 가려내어 영롱한 꽃 잔치의 D데이를 제각기 손꼽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도시가 확장되어 산밑에까지 아파트가 들어 선 이후로는, 아무 때나 뻐꾸기가 울어대는 통에, 눈보라 속에 제 목을 내밀었다가 얼어죽은 아파트 근처 새싹의 푸른 꿈이, 자연을 죽이고서야, 그 자연이 그리운 인간들이 시간마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즐기는 사기극에 무참히 짓밟힌 비극이었다.
이제는 속일 줄 모르는 하느님의 시계는 돌아가, 갓난아기의 피부같이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남풍이 불어 이땅의 파충류와 양서류들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멀리 뿌옇게 바라보이는 산 속에서 노오란 생강나무 꽃이 남몰래 피어, 평온한 잠 속의 내 코끝에 노오란 향기를 뿌려주었다.
깃발을 나부끼며, 꿈을 실은 배들은 고동 소리를 울리며 힘차게 출항하고, 미리감치 바람에 일렁거리는 보리밭 창공으로 높이 올라간 종달새는 마냥 우짖어 들에는 모두 푸른 꿈이었다. 이쪽으로 건너오는 나루를 향해, 한껏 부푼 돛폭에 바람을 안고, 강물을 가르며 떠오는 나룻배엔 푸른 보자기에 싼 선물들이 따스한 가슴마다 안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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