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는 독립유공자 후손들만의 자조섞인 푸념이 아닌 사실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지난 2월18일 자 경향신문의 보도 내용이다. ‘독립유공자 유족실태 설문조사 결과’ 독립유공자 후손 10명 중 6명은 현재 직업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또 가난과 궁핍으로 이어져 자신의 생활·경제 수준이 ‘하층’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역사 전문가들은 ‘잘못된 역사 청산의 잔재’라고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다. 즉 친일파 후손들은 선대의 명예와 부를 물려받았지만 독립유공자들의 자손들은 선대의 가난과 피해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역사 청산 작업 등을 통해 지금이라도 거꾸로 가는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작년 8월14일 일제하 친일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 이 국회의원 154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을 때, 모처럼 국회의원들이 합심해서 좋은 일 하려나 보다며 온 국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6일 이리저리로 찢긴 누더기 모습이지만 가까스로 국회법사위를 통과, 27일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좌절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반대로 갑자기 제동이 걸린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한나라당 지도부가 딴지를 거는지 모르겠다.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는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뿐, 분단이라는 상처를 안고 또 다른 시련을 겪고 있다. 해방 후 권력을 잡은 이승만 정권은 일제 잔재 청산은 커녕 그들을 자신의 전위세력으로 삼음으로써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강제 해산시키고 민족의 비극인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한 남북 분단상황을 틈타 지나간 과거를 감추려고 반공 애국세력으로 둔갑한 채 지금까지 이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아 온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회가 전액 삭감한 ‘친일인명사전’ 예산 5억을 시민들이 11일만에 모으며 기대했던 ‘개전의 정’ 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친일파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들의 열망쯤은 시들방귀로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친일파 후손들이 득시글거리는 기득권층 눈치를 보는 것인가. 조상의 치부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의원들이 상당수인 현실 때문인가.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다면 민족정기는 좀먹고 민족의 가치관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구호에 불과하다.

오늘은 여든다섯돌을 맞는 3.1절이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군경의 총칼 앞에 무참하게 피흘린 선열들의 울부짖는 절규를 들어보라. 노여움으로 가득한 국민들의 핏발 선 눈초리가 보이지 않는가.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한나라당, 이제는 제발 밝은 길로 돌아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