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표결사상 첫 헌법재판소장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라는 인사참사를 겪으면서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방식에 대폭적인 수술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는 문대통령에겐 새로운 시험대다.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국회에서 650건에 육박하는 법률제정과 개정이 필요하다. 반대세력까지도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이루기가 쉽지 않다. 지난달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덜컥 부결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법인세인상과 선심성 복지정책을 담은 내년도 세제개편안과 예산안, 의료보장을 확대하는 이른바‘문재인 케어’심지어 적폐청산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어렵다. 문대통령이 지지율만 믿고 밀어붙이려다가는 장벽에 부딪힐게 틀림없고 이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막후에서도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지도부가 야당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끈질긴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1991년 1월 20일 미상원회의장의 한 장면
1차 걸프전 종전을 앞두고 지상군 파병동의안을 의결하기 위해 상원의원들이 숨죽이고 있을 때 다수당인 민주당원내총무 앨고어(테네시 주)의원이 발언대 앞으로 나가더니 마이크를 잡는다.
“민주당 원내총무입니다. 우리민주당은 지상군 파견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지상군을 투입해 지루하게 계속 돼 온 걸프전을 끝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미국의 국가이익입니다. 지상군파견에 반대가 당론이긴 하지만 나는 며칠 전 지역구인 테네시 주 주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봤습니다. 80%가량이 지상군은 파견돼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뜻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원내총무이지만 당론을 어기고 지상군 파병에 찬성하고자 합니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중간중간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앨고어는 동료민주당의원들이게도 귀띔을 하지 않은게 분명했다.
1989년 KBS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12대 국회를 취재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대한민국국회 본회의장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에 저으기 당황했고 기자석을 지키고 있던 내외신기자들도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다수당의 원내 총무가 소수당인 공화당의 의견에 동조하기로 결정한 것은 부시대통령과 공화당지도부의 협치노력 이라고 본다.
미국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로 여야증진을 초치해 여야의 협조가 필요한 국정과제를 설명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아마도 앨고어 총무도 여권의 이런 협치와 소통노력에 설득당해 미국국익우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협치와 소통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 공짜의 산물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한 예이다.
파병안은 민주당의원들의 도움으로 가결돼 2월 24일 미국지상군은 걸프전에 파견됐고 다국적군은 대규모 지상군을 편성해 이라크로 진격시켰다.
1991년 2월 28일 10:00를 기해 지상전 종결이 선언됐고 미국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은 승리했다. 앨고어 원내총무의 느닷없는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았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내린 용단, 결국 다수당이 몽니를 부릴 수 있지만‘협치’의 길로 나서 걸프전에서 승리의 쾌거를 이뤘다고 국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미국의회도 여소야대인 경우가 많지만 오랜 의회민주주의의 학습효과로 다수당이 정부와 소수당이긴 하지만 여당 편을 들어 도와줌으로써 미국국익의 성취를 만끽한 경험을 갖고 있고 그들은 이걸 다수당과 소수당의 협치의 성과라는 자부를 갖고 있다.
지난 5月 문재인 대통령정부가 출범했으나 국정운영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됐고 그 예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여당이 국회에서 제 1당이긴 하지만 과반수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데 야당 측과의 협치 라는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협치와 소통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협치는 맨입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야당정치인들부터 만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 기위해 돕고 지원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해야한다.
뼈를 깎는 노력의 모습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협치와 소통은 맨입으로 되는, 공짜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