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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장수 맘대로?
2001년 04월 17일 (화) 00:00: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나는 가끔 도시 근교의 오일장(五日場)을 즐겨 찾는다. 그곳에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 추억을 더듬어 보는데 오늘도 장터에 들렀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니 엿장수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엿을 팔고 있었다.
나는 어느덧 어린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뒤새김질 하고 있었다.
엿장수의 시끌벅적한 엿가위 소리가 자지러지게 고살을 누비면 마을 조무라기들이 쪼르르 모여들었고 어머니들은 단 것을 많이 먹으면 이가 삭는다고 하면서 엿을 사달라고 조르는 우리들을 달랬다.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꼬옥 껴안고 눈물을 치맛자락으로 닦아 주셨고 그다지 좋지 못한 영양상태 때문에 곧 잘 흘리던 콧물도 자국이 벌겋게 드러나도록 썩썩 씻어 주셨다.
빈 병 헌 고무신 같은 것을 들고 나와 엿을 바꿔 먹는 또래들을 쳐다보며 군침을 흘리는 아이에게 수염이 부어부얼한 엿장수는 반(半)의 반 가락을 두 쪽으로 자른 동강엿을 주거나 엿자박 떼는 엿끌을 대고 엿가위로 탕탕 쳐서 한 입에 오그려 먹을 만큼의 자박엿을 주었다. 엿장수 곁을 지나는 아낙의 등에서 뒤로 드러눕듯 떼를 쓰는 어린것에게도 그런 동강엿이 물려지곤 했으니 시골의 엿장수는 그토록 인심 좋고 구수하고 친근했었다.
세간(世間)에 퍼진 속어(俗語) 가운데 '엿장수 맘대로?' 란 것이 있다. 매사가 자의(自意)로 쉽사리 안 된다는 반어적(反語的) 표현이었다. 이 말은 차가운 눈길의 냉소와 안으로 울림하는 부자유와 치미는 울화를 송곳질 하는 조롱이 범벅되어 야릇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이 말은 엿장수가 엿과 바꿀 고물(古物)의 값을 제 맘대로 매긴다 해서 그런지 보채는 아이들에게 떼어 주는 엿을 노름판의 개평처럼 제멋대로 준다해서 그런지 가위를 몇 번씩이든 맘대로 친다해서 그런지 잘 모를 일이다. 5·16직후 저명한 만화가 한 분은 일간지에 연재하던 시사만화에 엿장수의 가윗소리를 담았다가 그 뜻이 무엇이냐는 사후검열에 걸려 혼이 났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 변해 뒤바뀐 세상을 기묘하게 풍자한 만화였다고 기억한다.
손댄 일마다 꽈배기 꼴이 되어가는 이들이 친구와 더불어 술잔이나 나누게 되면 온갖것 다 집어치우고 엿장수나 해야겠다고들 했다. 지게나 져야겠다는 둥 리어카나 끌어야겠다는 둥의 푸념도 없지는 않았으나 '엿장수'는 예나 지금이나 산업예비군(?)의 대표적 직함인 셈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구멍가게라도 차려야지 포장마차라도 꾸며야지 하면서 이미 타이어에 깔린 나비 날개 꼴이 되어버린 사장의 꿈을 끝내 저버리지 못한다.
동지(冬至)가 지난 세 번 째 술일(戌日)에 선조들은 풍농을 기원하는 납향(臘享)을 올렸다는데 그것은 잘 모르겠으나 우리 집에선 해마다 그 납평(臘平) 날에는 엿을 고았다. 큰 솥 가득 밥을 해서 그 밥에 엿기름을 거른 물을 부어서 그 밥에 엿기름을 거른 물을 붕 삭히면 식혜가 된다. 독에 채운 식혜에 두고 군불을 때서 방을 덥게 했다.
온도와 시간이 맞지 않으면 식혜가 덜 삭거나 재넘겨진다. 오래도록 너무 덥게 두면 재넘은 식혜가 되어 시큼한 맛이 나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엿기름을 많이 쓰면 단 맛이 더 나지만 식혜의 색깔은 잿빛이 된다. 잿빛 식혜에서 엿밥을 건져낸 엿물을 솥에 안치고 불을 때서 졸이면 갈색의 엿죽이 된다. 이 엿죽을 고아 묽게 하여 항아리에 조청(造淸)감으로 담아두고 여러 가지로 사용했다. 산자( 子)를 만들때엔 어김없이 이 조청을 써서 산잣밥을 붙였고 다식(茶食)도 이 조청으로 버무렸으며 깨강정도 엿으로 비벼 집었다. 설날 하정객(賀正客)이나 세배꾼들에게 떡을 대접할 때에는 으례 종지에 조청을 담아 상에 올렸다. 소년시절 마을 집집으로 세배를 다닐 때 떡과 조청을 신물 나도록 먹을 수 있었다.
이 조청을 더욱 고거나 오래 두어 굳으면 딱딱한 갱엿이 되는데 우리 어머니들은 이걸 조금씩 떼어 찬물에 녹여 꿀물 대용(代用)으로 쓰기도 하고 아이들 얼굴에 피어나는 마른버짐을 묻혀 재기도 하고 미운 일곱 살 이갈이의 충치를 빼는 데에 쓰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렇게 엿을 즐기며 엿치기도 하고 설탕보다 많이 먹고 지냈지만 요즘아이들이야 주전부리할 게 지천이어서 엿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식품산업이 발전하면서 어린이들의 기호도 변천하기 마련이다. 엿에서 눈깔사탕으로 다시 양과자로 다시 아이스크림 같은 빙과류로 인기가 모아졌다. 지금은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이름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우니 금석지감마저 든다. 이러다간 전래(傳來)의 엿은 자라나는 세대들의 외면으로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약삭빠른 장삿속 때문에 많은 식품들이 유해 물질을 품고 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마음놓고 사서 먹을 것이 별로 없다고까지 하며 야단들이다. 첨단 기술은 설탕의 수백 배 감도(甘度)를 내는 감미료(甘味料)를 내놓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식혜로 엿을 고아 무공해 조청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남을 속여 불이익(不利益)을 당하게 하거나 감언이설로 꾀어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엿 먹인다'고 한다. 또 '엿 먹어라!'라는 말도 하는데 이것은 섬뜩한 저주를 바늘처럼 내뱉는 말이며 강자(强者)를 향해 팔뚝엿을 먹이면서 하는 말이다. 사라져가는 전래의 식품이 어디 엿 뿐이랴만 억지로 먹이는 '엿'이 아니고 욕을 하는 팔뚝질의 '엿'이 아니니 전통과 인정과 조상의 숨결이 한데 어우려진 그런 엿에 대한 향수는 누구에게든 향긋한 것이리라.


수필가 신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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