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는 이를 기다리며
 몸살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 났다. 거실로 나왔다. 등을 켜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여명이 있었다. 책꽂이 책들을 둘러 본다. <고도를 기다리며>. 집어 들었다. 너에게 내가 고도다. 기다리는 고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곱권 짜리 소설 <신>에서 우주의 극한까지 시공간을 몰아 부쳤다. 그 끝이 어디였을까? 바로 독자의 눈이었다. 결국 글-그 속에 들어 있는 주장과 지혜-이란 누군가가 읽어주어야만 생명을 얻는 것이다. 결국 책은 기다리는 존재다. 독자를.

■ 기다림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인생이지만 그건 현상일 뿐이다. 본질은 기다림이다. 만나기 전까지 기다림, 헤어지고 나서의 기다림으로 채워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남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행동한다. 감정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 오른다. 희망과분노가 공존하고 기대와 좌절이 교차한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관이 결정되고 인격이 완성된다고 소설가 최인호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가?

■ 고도를 기다리며
 소설은 맥락이 없다. 시공간적 배경이 없다. 그저 황량한 벌판 낮은 언덕의 버드나무 한그루만 있을 뿐이다. 작가가 1906년 생이며 아일랜드 출신이고, 성년이 되어 프랑스에 정착했다는 점. 이 소설이 1953년 그의 나이 47세에 프랑스어로 출간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조금 이해를 할 뿐이다. 이 희곡을 구한말 천주교 신도를 몰살한 새남터 어떤 언덕으로 상상해도, 권 정생선생님이 살았던 빌뱅이 언덕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우리 지역 이어니재나 길재는 어떨까? 가능하다. 

■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
 주인공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는 젊은 시절 곡절을 많이 겪었다. 고루한 노인이 된 그들은 이제는 구원을 바란다. 기약 없는 기다림, 근거 없는 기다림은 삶을 어떻게 만들까?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은 아마 오늘 같을 것이다. 기다림은 지루함과 던적스러움으로 채워 진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허접스런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우리가 뭐하고 있지? 아! 고도를 기다리지”한다. 의미 없는 말을 의미 있듯 하고 곧 잊어 버린다. 잊었지만 그게 뭐더라~하며 서로 시비를 붙는다. 내 말은 수정이 가능하고 네 말은 수정이 불가능하니 나는 비판받는 일이 없으며 너는 비판 받아 마땅하게 된다. 인생이 일상이 되면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간다. 앙상한 버드나무 가지가 푸르게 무성하게 되었어도 두 주인공에게는 시차가 없다. 어제가 언제였나? 

■ 지나가는 이들
 황야를 주인과 하인관계인 뽀조와 럭키가 지나간다. 어제는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는 주인과 노예지만, 오늘은 장님과 벙어리가 되어 지나간다. 세상은 이렇게 태어나 죽어 간다. 그 과정에 고통만이 존재할 뿐이다. 살려주세요. 어제는 릭키가, 오늘은 뽀조가 말한다.
 소년은 고도가 오늘은 못 온다고 말했다. 어제도 오늘도 같은 말이다. 반응도 같고 대화도 같다. 황량한 벌판도 같다. 블라디미르가 소년에게 당부하는 말도 같다. “네가 틀림 없이 날 보았다고 그래. 너 내일 와서 오늘 나를 만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겠지?”

■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일까? 영화 <식스센스>나 <싱글라이더>의 주인공은 아닐런지. 죽은 이는 이렇게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나 산자는 그럴 수 없다. 뽀조와 럭키처럼 살 수밖에. 비록 삶이 노골적이진 않지만 뽀조와 럭키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살 수 밖에. 희곡을 읽으며 ‘멘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살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