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48년생으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분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있었던 러-독전쟁에 참전한 수백 명의 소녀병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 전쟁에 러시아 백만여 명의 여성들이 참전했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15~19세이었다. 보직은 간호병,저격병,포병,해병,빨치산,지하공작원등 다양했다.
 이 책은 1983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출간은 85년에 되었다. 출판검열당국은 이 책이 '전쟁이 너무 무섭게 묘사되었다는 것, 끔찍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것, 선도적이고 지도적인 공산당의 역할이 없다는 것'의 이유로 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종전 후 전쟁은 남자들의 것이었고, 기록은 영웅의 거대 서사로 이루어졌다. 승전의 한 주역인 여성의 존재는 종전 후 이내 잊혀졌다. 오히려 음해와 편견이 지배했다. 참전 경력은 결혼을 못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인터뷰 내용에 이런 게 있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우리에게 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몽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우리 남편들한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군대의 암캐들아..."
 작가는 "크고 위대한 것이 작고 평범해지는 그 순간을.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을 압도하는 순간을 여러 번 목도'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거다. 고사포병사의 증언이다. "내가 전쟁터에서만 예뻣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작가는 이 작음에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 ‘신념’과 ‘진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가 팔렸다. 그러나 1992년에 이 책에 대해 재판이 열렸다. 저자가 진실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하자, 검열관이 말한다.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로. 우리가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
 검열관이 이야기하는 '이념(신념)'이나 저자가 이야기 하는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터뷰에 나온 분들은 '조국의 승리'를 위해 대부분 군에 자원 입대 했던 사람이다. 또한 전쟁의 참혹함?속에서도 자신들의?삶을 노래했다. 사실 이 건 상식이다. 우리 삶이 다 그렇지 않은가. 맹자가 말하는 사단칠정의 삶이 우리의 모습이니까.
문제는 어느 조건 어느 상황에서 어느 면이 강조되냐는 거다. 그것도 누가. 80년대 까지 동서냉전은 국제질서의 기본구도였다. 소비에트 국가 입장에서는 '전쟁 영웅'이 선양되어야 했다. 그러나 후루시쵸프가 스탈린을 비판하고, 고르바쵸프에 의해 개혁,개방 정책이 채택되면서 개인의 실존적인 체험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분들도 양가성이 있었다. 저자와 단 둘이 대화할 때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 있었지만, 둘 혹은 셋 이상 모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단다. 자기 검열이 작동했을 것이다. 공식석상에서는 영웅의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은밀한 내면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을 훔쳤다는 것이다. 이해한다. 그 것도 우리 인간의 모습이니까.
정작 문제는 관용이다. 이런 면과 저런 면이 공유되고 이해되며 인정되고 공감되어야 건강한 개인과 사회가 될 수 있다. 전쟁 영웅의 모습만을 그리거나 인간 실존에만?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뛰어나다.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여줬기 때문이다.

■ 전쟁은 결국 전쟁이다.
참혹하고 냉엄하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섹스와 젠더를 넘어 반전의 연대를 다져야 한다.  젊은 날 나에게 전쟁이 없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전쟁을 체험한 윗 세대들을 존중한다. 나이 들며 자꾸 민족과 이념이 허위스러워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총을 들 수 밖에. 내 가족과 공동체를 위하여. 그런데 왠지 두렵다. 나이 든다는게...'늙은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젊은이는 죽음에 코웃음을 치지. 젊은이들은 자기가 영원히 살 줄 아니까! 나도 그땐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젊은이에게 전쟁을 부추키는 노인네가 될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