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적 운명론
  '낭만'과 '운명'의 만남. 언젠가 멋진 남자,여자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낭만이라 치자. 만남이 사랑으로 진화하는 것을 운명이라 치자. 만남의 낭만성과 사랑의 운명론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낭만적 운명론의 평균수명이 짧다는 거. 만남은 낭만 풍선을 터트리는 바늘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사랑은 운명이라는 순수의 백지에 뿌려대는 물감이기 때문이다. 하여, 낭만적 운명론을 신봉하는 당신은 그 바늘과 물감도 에로틱한 도구로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 이상화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내가 가진 약점- 비겁함,심약함,게으름,부정직,타협성,끔직한 어리석음등-을 상대에게서 발견하지 않는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 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이다. 이상화는 어리숙해 보이는 상대방의 행동에도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한 없이 멋 있는 그 어떤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 철학과 종교에 빗대기
 철학은 회의고 종교는 믿음이다. 전자의 수단은 이성이고 후자는 직관이다. 사랑에 대하여 의심하면 철학이고 빠지면 종교다. 수 많은 연인은 철학적 태도보다 종교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사랑이 객관적 실재성을 갖도록 하는 종교가 연인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 실제로 인형을 분신처럼 갖고 다니는 아이에게 그 인형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인형에게서 받는 자기 위로,위안,평화,사랑이 그 인형에게 실제로 존재해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사랑이란 그 무엇이 꽉 차 있어서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랑은 관계성에서만 피어난다. 내가 계란인데 상대가 식빵이 되어서 관계가 온전해지는 그런 것. 계란만 있고 식빵만 있어서는 불안해지는 그런 것. 그 것이 사랑의 모습이다.    
 
■ 낭만적 테러리즘
 이별을 선고 받고, 실연을 당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일단 물리적으로 이 파국을 막을 순 없다. 막는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리하면 더 큰 화만 불러 일을킬 뿐이다. 다만 사소한 실수에 과도하게 대응하여 상대의 잘못이 뭔지를 깨닫게 해 주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것이 낭만적인 테러라 할 수 있으나 결국 파국의 압당김일 뿐이다. 그저 분풀이일 뿐이다. 분풀이 

■ 이 소설?
 꽁트집이다. 한 남자가 프랑스발 비행기 안에서 한 여인을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정확히 일 년 후. 영국발 비행기 안에서 이별을 선고 받았다. 그들의 사랑은 에피소드의 연합체. 그 에피소드에 각 주를 붙여 놓았다. 너무나 철학적인 하여 사색적인. 그래서 어마 무시한 비대칭의 댓구가 만들어진다. 사실은 코 푸는 것인데 해석이 바벨탑이다. 진지하긴 한데 왠지 웃겨져 버리는.

■ 꽁트집?
 그렇다면 다 읽고 책장 안으로 훅~ 던져 버리는 그런 가벼운 책일까? 이 책은 독자의 감성 나이를 평가하는 설문지다. 질문. 이 책이 동감되고 주인공의 의식 흐름에 무리없이 따라갔는가? 그랬다면 당신 나이가 60이여도 감성 나이는 아랭드 보통이 이 소설을 쓴 나이 25세 언저리쯤에 해당된다. 뭔 말인지 모른다면 질풍노도 10대의 감성일 것이고, 알긴 알겠는데 동감이 안 된다면 당신의 사회적 지위만큼 굳어버린 50대 갱년기 이후의 중년 감성에 해당된다.

■ 우리의 사랑은 시작과 끝이 있다.
 사실 우리는 사랑의 시작과 끝,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헤매고 있다. 그 감정의 폭이나 관계의 미래가 어떠한지 잘 모를 뿐. 당신 사랑의 스토리에 색을 입히고 진동을 시키고 싶다면 이 소설은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거다. 17장 '수축'이라는 장 이후 전개되는 주인공의 내러티브는 더욱 그렇다. 마르크스컴플렉스에서 예수컴플렉스로, 낭만적 실증주의와 금욕주의, 자살의 윤리학은 당신이 실연을 당할 때 유용하게 써 먹을 무기가 될 것이다.

■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의 사랑학
 이 책. 나의 감성을 긁어내는데 성공했다. 고로 감성나이 25세 언저리가 맞다. 그러나 성욕이 밑에서 입으로 올라오는 나이가 되었으니 소설의 어느 대목에서는 부럽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쉽지 않다. 소설 속 주인공의 그런 대립물의 투쟁을 일삼는 다이나믹 심리보다는 50대 중년의 대립물의 통일을 일구어 나가는 안정된 사랑학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