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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실록(實錄) - 조선왕조실록속의 보령14]과거(科擧) ⑤
2015년 07월 14일 (화) 16:12:44 이후근 기자 webmaster@charmnews.co.kr

본격적인 과거제도의 시행은 조선 개국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고려시대 초기 광종 때 과거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과거제도가 시행되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많았다. 우선 왕실을 비롯해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친 불교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또 고려는 지방호족과 문벌귀족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고려의 과거제도는 관리의 등용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리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대신 귀족의 자제들이 음서제를 통해 관리로 진출하는 등 과거를 통한 관리 선발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밖에도 원의 간섭기에는 과거제도의 정상적인 실시가 어려웠다.

고려 말 공민왕은 강력한 배원정책을 실시하면서 원나라로부터 주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공민왕은 원나라에 빌붙은 부원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해 신흥무인세력과 신진사대부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이런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공민왕은 유명무실했던 과거제도를 강력하게 개혁했다. 그러던 공민왕이 의문의 죽음을 맞고 우왕이 즉위했다. 우왕의 즉위는 공민왕대에 배척됐던 구 귀족세력이 득세하고 신흥사대부 중심의 개혁론자들이 밀려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민왕의 개혁의지가 담긴 과거제도도 구 제도로 환원됐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는 구 귀족세력에 대한 반발은 당연지사. 마침내 신흥무인과 신진사대부 세력이 우왕을 비롯해 구 귀족세력을 몰아내고 창왕을 세움으로써 과거제도도 제자리를 찾았다.

조선시대 과거에는 소과·문과·무과·잡과의 네 종류가 있었으며, 또한 정기시와 부정기시의 구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과 고려의 과거가 크게 달랐던 점은 승과의 폐지와 무과의 실시를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승과를 설치해 승려에게도 시험에 의한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다. 신생 조선에서도 승과는 유지됐지만 본격적인 유교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열망했던 신진사대부세력들에 의해 승과폐지가 끈질기게 주창됐다. 결국 승과는 연산군대에 이르러 폐지됐다. 이후 어린 명종의 섭정을 하게 된 독실한 불교신도인 문정왕후에 의해 40년간 중단되었던 승과시험이 일시적으로 실시되기도 했지만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곧 폐기됐다.

본격적인 무과의 실시도 고려의 과저제도와 확실히 다른 점이다. 고려에서는 초기 24년을 제외하고는 무과가 없었으며, 공양왕 2년(1390)에 설치되기는 하였으나 실제로 실시되지는 않았다. 고려시대에 과거의 중요한 부문인 무과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과거제의 결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려의 과거가 본격적인 과거제도라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은 개국 당시 태조 이성계가 즉위교서에서 ‘문/무양과를 균형적으로 운영한다’고 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무과시험이 실시됐다. 과거제도에 문과와 더불어 무과가 실시된다는 것은 문무 양반 체제를 지탱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이다. 신생 조선은 구 귀족세력에 맞서 국왕에게 충성을 바칠 관료집단을 양성하기 위해 과거제를 택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명경, 제술로 나누었던 과목도 문과로 통합됐다. 조선시대 진사시에 해당하는 국자감시도 혁파됐다. 그 이유는 성리학 신봉자로서 사장보다는 경학을 중시하였던 집권사대부들이 사장시험인 진사시보다 경학시험인 생원시를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국자감시가 폐지된 것에는 고려시대 귀족들의 붕당·학벌·족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등의 폐해를 자아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잡과도 변화가 있었다. 조선 개국 초기 고려시대의 잡과 중 잔존된 것은 의과·음양과 뿐이고, 새로 역과·이과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조선 집권사대부들은 국가사회의 운영에 기술학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잡과를 두었으면서도 유교적인 직업 관념에 의거하여 기술학을 점차 천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술직은 점차 양반에서 도태되거나 양인에서 상승한 부류들이 종사하는 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기술관 등용시험인 잡과의 격이 떨어져 점차 하급 지배신분층인 중인층의 과거로 전락됐다. 

<자료인용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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