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옛 보령에 출몰했던 왜구에 관한 기록을 실록에서 찾아 봤다. 왜구가 자주 출몰했던 이유는 보령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얕은 바다인 서해 연안에 직접 맞닿은 보령은 왜구가 쉽게 뭍에 오를 수 있는 정박지이자 내륙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상륙지점이 될 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보령은 홍성·예산 등 내포지방과는 다르게 한양의 양반세도가들이 그리 관심을 둘 만한 지역이 아니었다. 평야 지대와 낮은 구릉이 연이어 있던 내포지방은 과거 한양 양반세도가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과전(科田:고려·조선왕조에서 국가가 국정 운영에 참여한 대가로 문무양반 등에게 그 직책에 따라 일정한 특권을 갖도록 지정한 토지), 공신전(功臣田:고려·조선시대에 국가 또는 왕실에 특별한 공훈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한 토지) 등의 주요 소재지였다. 하지만 보령은 차령산맥의 끝자락이 바다로 바로 이어져 있어 토지가 충분하지 않고 따라서 농산물 또한 풍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로 치자면 오지였던 셈. 당연히 중앙 정부가 관심을 둘만한 지역이 아니다보니 방비 또한 소홀해서 왜구의 출몰이 잦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왜구가 극성을 부렸던 고려말 보령과 남포읍성은 허물어지고 사람은 살지 않는 무인지경이 돼 버렸다. 보령이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되기 시작한 것은 건국 초기의 혼란스런 상황을 수습한 조선 정부의 대대적인 왜구 토벌 이후이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를 정벌해 왜구들의 소굴을 일거에 없애려 했다. 대마도 정벌을 진두지휘한 이는 태종 이방원, 태종은 이미 왕위를 세종에게 선양했지만 군권을 직접 지휘해 왜구 토벌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태종은 정치적인 무리수를 둬야 했다. 태종은 자신의 사후 아들 세종에게 가장 위협적인 정치세력이 되리라는 계산으로 심온일파를 제거했다. 심온은 영의정이자 세종의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생부. 선위했음에도 불구하고 군권을 내어 놓지 않는 태종의 처사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그러나 역모를 일으킨 대역죄인의 딸을 국모의 자리에 그대로 둬야 했을 정도로 심온의 옥사는 억지이고 무리였다. 이후 심온의 외손자 문종은 심온의 옥사는 박은 등의 무고로 밝히고 관작을 복구시켜줬다. 이렇듯 대마도 정벌의 배경은 외척을 제거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태종의 정치적 계산이었겠지만, 신생 조선에게 왜구 토벌은 국가의 근본인 백성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최대 현안이었을 것이다.

대마도를 정벌한 후 왜구의 준동이 어느 정도 잦아들자 조선 정부는 국방체계를 바로 잡아 나갔다. 허물어졌던 각 군·현의 성(城)을 재정비하고 군영도 새로 설치했다. 새로이 설치된 군영 중 바다를 방비하는 수군도 재정비됐다. 충청지방 서해연안 방어를 위해 충청수영도 새로이 재정비 됐다. 세종대에 육군과 수군의 역할이 다소 혼재돼 있던 첨절제사를 수군도안무처치사로 바꾸어 부르며 수군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처음 충청수영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령현 서쪽 대회이포(보령 오천 소성리 일원)에 이르렀다”라고 기록돼 있다. 물론 세종조 이전에도 보령에는 바다를 지키는 첨사가 임명돼 있어 수영의 역할을 했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 충청수영은 고만(주교면 송학리 송도)에 있었다. 고만은 보령화력발전소 건설로 지금은 육지가 왜 있지만 조그만 섬 이었다. 따라서 해상을 오가는 선박을 관찰하기는 쉽지만 바다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어 왜군의 침입 시 방어에는 불리한 점도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본격적인 충청수영은 바다 깊숙이 자리 잡은 오천에 자리 잡았다.

오천은 지금도 인근 해안 도서를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의 역할을 하고 있을 정도로 천혜의 요건을 가진 포구이다. 현재 해군의 주요 기지인 진해와도 그 입지가 매우 흡사하다. 충청수영은 세종 29년 성을 쌓고 영사 건립을 시작하는 등, 수도 한양으로 올라가는 서해연안 수군기지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이후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에 배속돼 왜군과 싸웠다. 왜란 중 이순신이 모함과 선조의 질시로 백의종군하게 되어 원균이 통제사로 있을 때 충청수사 최호(崔湖)는 61세의 나이로 칠천량 해전에 참전했다 전사하기도 했다. 이후 서해 연안방어의 중심기지 역할을 다하던 충청수영은 갑오개혁 이후 1896년 수영은 폐지되었고, 1901년에는 객사 등 몇몇 건물만을 남겨 두어지고 모두 불타 없어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자료인용 -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