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12 수 15:32
의정비, 시립노인병원
 
> 뉴스 > 기획
     
[보령 실록(實錄) - 조선왕조실록속의 보령5]
보령의 수령(首領) ②
2015년 04월 07일 (화) 15:37:26 이후근 기자 webmaster@charmnews.co.kr

속칭 ‘원님’이라 불렸던 조선의 수령은 목민관이라 하여 국왕의 분신으로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일을 맡나보던 관원이다. 이들의 임무는 조세를 수납하고 중앙정부의 시책을 장려하는 등 행정에 관련된 것에 그치지 않고, 백성들의 죄를 다스리는 재판권과 형사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평소 관할 고을을 지키는 군대를 관리하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적과 싸웠던 지휘관의 역할도 겸했다. 근대 민주주의가 시행된 지금의 자치단체장의 권한과는 그 개념부터 달랐다. 또 그만큼 당시 백성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록에도 보령땅을 거쳐갔던 수령의 다양한 모습이 전해진다.
지방 수령의 일은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 등에 정해져 있다. 경국대전에는 수령칠사(守令七事)라 하여 수령의 여러 가지 일 중 중요한 일곱 가지를 정해 놓았다. 유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법치를 중요한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수령칠사 각각의 사항은 ‘농업장려·교육진흥·향리의 부정방지·호구 확보·부역·소송·군사관리’ 등이다.
수령칠사 중 가장 먼저 정해진 사항은 농업장려에 관한 것이다. 세종23년(1441) 9월 5일, 세종은 새로이 부임하는 보령현감 안영(安永)을 만나는 자리에서 “농상(農桑)을 권하고 부과하는 것은 수령의 앞선 임무이나, 지나치게 급히 하면 백성이 소요하고 지나치게 늦추면 때를 잃을 것이니, 급하게 하지도 말고 늦추지도 말게 하라. 가거들랑 네 마음을 다할 것이다. 의창(義倉)의 곡식을 징수하고 나누어 주는 것은 마땅히 부지런히 하고 삼가 해야 할 것이나, 각박(刻迫)하게 하지 말 것이다. 형벌(刑罰)은 모름지기 너그럽고 바르게 하여야 할 것이니 중도를 잃지 말게 하라. 또 충청도 백성들은 두 번의 거둥으로 인하여 소요함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금년에는 좀 풍년이 들어서 기근(飢饉)할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 하니, 내가 이를 듣고서 기뻐하였다. 가서 너의 직무에 나아가 정성을 다하라.”며 당부했다. 이 기사에 수령칠사를 이루는 모든 항목이 거의 모두 언급돼 있다.
수령칠사 중에서도 농업장려에 관한 부분이 제일 먼저 언급돼 있어 그 중요함이 으뜸인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은 농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여겼고, 농업 장려에 대한 원활한 국정운영은 최우선 국정과제였다. 위에 언급된 실록 기사에서도 농업을 장려하는 일에 많은 분량이 언급돼 있어, 부임지로 떠나는 수령에게 농업을 장려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임무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고장 보령·남포현의 수령이 언급된 실록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사실을 다수 발견 할 수 있다. 세종24년(1442) 7월 12일, 세종은 새로이 보령현감에 부임하는 김표(金?)를 불러 당부하면서 “수령의 직책은...중략...농사짓고 누에치는 일을 권장하는 데에 마땅히 각자의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하여 농업을 장려하는 일이 수령의 최우선 과제임을 일깨우고 있다.
농업의 장려와 함께 수령의 중요한 일은 진휼(賑恤)과 관련된 것이다. 세종9년(1427) 7월 11일 보령현감 강여중(康汝中)을 불러 “근래에 9년이나 가물고 3년은 더욱 심하였는데, 그 중에도 금년이 가장 심하니 그대들은 가서 마음을 다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여 그들로 하여금 굶주려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며 당부했다. 천재지변으로 농사를 망친 백성들이 굶주리는 기근은 조선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조선의 국왕에게 백성들의 기근을 극복하는 일은 중요한 것 이었다.
백성을 진휼하는 일을 국정운영의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조선의 국왕은 이 일에 대한 논공도 대단히 중요하게 다뤘다. 순조10년(1810) 5월 27일 국왕은 기근을 맞이해 진휼에 힘쓴 보령현감 함정희(咸正禧) 등에게 상을 내렸다. 함정희는 한 단계 이상의 품계(品階)로 승진하는 가자(加資)의 은사를 받게 된 것. 진휼하는 일을 소홀히 한 수령에 대한 징계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숙종24년(1698) 7월 17일 국왕은 남포현감 오시익(吳時翊)·보령현감(保寧縣監) 박인(朴?) 등에게 “구휼 행정의 모든 일에서 고을의 아전들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하고...중략...진휼 곡식을 나누어 줄 때에 아전들이 함부로 농간을 부리기도 하였다.”며 파직시켰다.<자료인용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후근 기자

이후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보령신문(http://www.charm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기사의견쓰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가장 많이 본 기사
시, 대천리조트에 추가 출자??
[박종철 칼럼]김동일 시장의 능력과
"폐광지역 지원 특별법, 연장해야"
이·통장연합회, 주민자치 중심된다
제64회 현충일 추념행사 가져
보령석탄박물관, 14일 재개관
"전통시장으로 Go! Go!"
지역 현안, 향우들이 돕는다
[특별기고]중부해양경찰청, 보령으로
청소년 어울림 마당 '성료'
 
우편번호 33436 충남 보령시 신설 3길 11, 1층(동대동, 모스트센터) | Tel: 041)936-0005 | Fax:041)935-1356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연중
Copyright 2009 보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jong86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