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날이네?”
 졸린 눈에 힘을 주고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오빠의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그저 먹는 거면 다 좋지?”
 오일마다 한번 와플 아저씨, 핫도그 아저씨, 뻥튀기 아저씨, 옛날 과자를 파는 아주머니, 온갖 채소를 찾을 수 있는 모녀 커플 트럭까지... 우리에게는 황홀한 날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점! 할머니께서 오일장마다 용돈을 주신다 .그 용돈으로 달콤한 와플을 사 먹을 생각에 덩달아 나도 들떠서 얼른 옷을 갈아 입는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옆집에 살았다. 할머니께서는 장날마다 그 동안 열심히 키운 농작물들을 시장에 가 팔고 오셨다. 항상 시장에서 벌어 오신 오천원 두 장은 오빠와 내 것이었다.
언제나 그래 와서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단지 초등학생 3학년 한테는 와플을 다섯 개나 사먹을 수 있는 큰 돈을 받는 것이 좋았고 오빠와 똑같이 받아서 좋았다.
 장날에는‘아빠버스’에 할머니와 함께 탄다. 승차 하자마자 할머니께서는 오천원 두장부터 꺼내신다. 마치 승차권을 내는 것처럼.
 “맛있는 거 많~이 사묵그라~”
 오빠와 나는 오천원을 한 장식 받아 들고 누구한테도 뺏기지 않겠다는 듯 주머니에 바로 찔러 넣는다. 떡볶이도 사 먹어야지~
 옆집에 살았어도 할머니와의 추억은 그리 많이 않다. 그저 일방적인 기억일 뿐.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나를 위해 해주신 게 너무나도 많았다. 손녀가 좋아하는 꽃을 마당에 심어주고 공부해야 한다는 손녀 대신에 물도 주고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을 때면 생일이 같은 손녀가 좋아하는 잡채와 동그랑땡 접시를 밀어주고 우리 손녀 잘 먹고 다녀야 하니까 용돈도 주고. 그 용돈을 주기 위해 여름에는 강렬한 햇살과,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과 맞서고.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분이셨다
 “공부 열심히 하고 오그라~”
 ‘아빠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오라는 말을 덧붙여 주신다 .정말 그 말씀 때문인지 와플 대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한다. 마지막 종이 땡~ 치자마자 친구들과 시장으로 달려가 와플 아저씨한테로 간다. 신나서 달려가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으로 바뀐다. 키도 크고 머리도 길고 가방도 새로 사고 바뀐 것이 많지만, 여전히 내 손에 오천원을 쥐어주시는 할머니는 변함 없다 .그러던 어느 장날 아침. 할머니께서 쓰러지신다.
‘삐용 삐용 삐요...ㅇ’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아빠 버스’에 올라 타 학교로 향할 뿐이다. 학교에서도 머릿속에 삐용삐용 소리가 맴돌아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 .죄 없는 시간만 죽이다 다시‘아빠 버스;에 올라탄다.
 “아빠, 할머니는?”
 그 때 할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셨었다. 연고와 밴드를 붙일 수 없는 안에서 피가 나 더 무서운.
 할머니께서 평생 동안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살아오셔서 하느님이 쉬는 시간을 주는 의미에서 쓰러지신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우리 할머니한테 일어나니까 너무 무서워서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아가 할머니가 입고 계셨던 옷에 있었어.”
 엄마께서 보여주신 건 오천원 두장.
그 것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진다 .눈물샘 속에 있는 물방울들이 자기가 먼저 나갈 거라며 앞 다투어 내려온다.
 할머니댁은 아궁이 불을 떼서 겨울이면 불내가 났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주시던 오천원에서도 불내와 할머니 냄새가 났다. 그 때는 그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머리에 베면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불내 때문이었을까.
오천원에서 나는 불내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득 그 냄새가 났다. 다시 맡으니 너무 정겨웠다.
 평소보다 할머니가 더 생각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