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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시코 교황 방문 이후 충남도 무엇을 해야하나?-순례자의 길]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찾다
수천명 원혼이 잠든 길에 깨달음이
2014년 11월 18일 (화) 14:06:54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 수리치골.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동안 ‘교황 신드롬’이 이어질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사회에 전한 메시지는 강렬했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교황은 이번 방한 일정 중, 당진시 솔뫼성지와 서산시 해미읍성 등 충남 내포지역의 주요 천주교 성지를 방문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타 종교인 또는 비종교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번 연합기획취재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충남지역에 미친 영향과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순례자의 길 조성 등 국제 관광지 조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기획됐다. ※이 취재는 충남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당진시대·내포시대·태안신문·충남시사신문·공주신문 연합기획취재팀>-편집자주

공주의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황새바위를 찾아주길 고대했으나 방문이 무산되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천주교의 역사에서 공주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포에서 시작한 천주교 전도는 결국 공주에서 337명의 순교자를 만들어냈다.

이번 기획은 337명의 순교자의 원혼이 잠들어 있는 공주에서 시작해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당진 솔뫼마을까지 120km를 연결하는 ‘순례자의 길’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보고 그 주변의 볼거리도 함께 짚어가며 한국의 산티아고가 되는 길을 상상해봤다.

   
▲ 성지순례길.
물론 800km나 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불붙은 천주교 성지에 대한 관심을 관광산업으로 연결시키고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며 심신의 평안을 찾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에서 출발해 스페인에서 끝나는 800km나 되는 긴 여정이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한 달씩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구간을 나누어 여러 해에 걸쳐 완주하기도 한단다. 모 언론에서 명품전략연구원 송진구 원장이 이 길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부부가 첫해는 둘이 다음 해에는 아기까지 3명이 5년이 지난 지금은 2명의 아기를 데리고 고행길을 걷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고행의 길은 아니지만 일주일정도의 여정으로 또는 하루 이틀씩 돌아볼 수 있는 길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홍주 생매장터.
이번 기획을 취재하면서 우리나라는 정말 종교박물관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공주만해도 계룡산주변에 전국에 이름난 갑사, 동학사, 신원사가 있고, 신원사와 갑사를 잇는 도로변에서는 수많은 점집들을 만나게 된다.

순례의 시작은 공주 영명고등학교 옆 선교사의 집에서 시작한다. 공주 개신교의 시발점이 된 선교사의 집은 공주시 전체가 조망되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선교사의 집을 북쪽으로 내려가면 바로 공주 중동성당이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142호로 지정돼있는 중동성당은 1898년 진 베드로 신부(프랑스)가 교당을 세우고 교리를 전파하기 시작해 1937년에 현재의 건물이 완공됐다.

다음은 백제시대의 왕궁이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 인조대왕과 인절미의 전설이 있는 공산성. 공산성을 내려가 연문 양쪽으로 맛집거리인 백미고을이 있다. 연문을 지나 다리 하나만 건너면 왼쪽으로 천주교 신자들의 원혼이 서린 황새바위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 황새바위.
황새바위성지에는 공주감영에서 직접 처형한 248명의 명단이 있고 그 후에 추가로 조사된 89명을 합쳐 337명이 순교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황새바위를 지나 언덕을 넘으면 바로 무령왕릉이다. 백제 25대 무령왕의 무덤으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에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령왕릉 아래쪽으로 무령왕릉의 부장품을 비롯해 많은 역사유물이 전시된 국립공주박물관도 볼만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공주보를 건너 공주보 통합센터앞을 지나 산길을 넘어가면 평목교가 나온다. 평목교를 지나 유구천을 따라 우성방면으로 향하다보면 36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청양방향으로 4km쯤 가면 공수원이란 동네가 나오고 오른쪽 96번 지방도로 들어서 2km쯤 가면 모덕사란 사당이 나온다.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1833∼1906)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익현은 철종 6년(1855)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며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다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했다.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대마도에 유배된 그는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했다.

96번도로를 따라 계속가면 39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 국도를 따라 2km쯤 가면 오른쪽으로 96번 도로를 또 만나게 된다. 그길을 따라 6km쯤가면 수리치골 성지를 만나게 된다.

수리치골 성지는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던 성모성심 신심 발상지로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형성에 공헌한 바가 크다. 수리치골은 박해 시대 교우촌의 하나다. 당시 공주 지방에는 국사봉을 중심으로 둠벙이, 용수골, 덤티, 진밭, 먹방이 등 여러 군데에 교우들의 은거지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수리치골이 가장 깊숙하고 넓어 많은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리치골이 특히 교회사적으로 의의를 갖는 것은 1846년 11월 2일 페레올(Ferr´eol, 高, 1808~1853, 요셉) 주교와 성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안토니오) 신부(1857년 주교가 됨)가 박해받는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성모 성심께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였던 성모 성심 신심의 발상지로서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형성에 공헌을 했다는 점에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 명동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님이 1846년 무서운 박해하에 공주 땅 수리치골에서 이 나라와 교회를 요셉 성인과 공동 주보이신 성모께 조용히 봉헌했다”고 상기시켰다. 페레올 주교는 성 김대건 신부에게 성품성사를 준분이다.

수리치골 성지가 있는 국사봉을 넘어가면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가 나온다. 신대리에서 홍성군까지 직선거리로 20km.

   
▲ 중동성당.
홍성에도 많은 관광지가 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를 비롯해 고암 이응로 화백의 생가도 있다. 시내에는 홍주성과 역대 홍주목사가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했던 여하정이 자리하고 있다.

홍성도 동헌과 진영이 있던 지역인 만큼 천주교 순교지를 많이 만나게 된다. 홍성은 한국 천주교가 창설된 직후부터 신앙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 내포 지역의 일부로, 충청도 지역에서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洪州牧)을 두어 목사(牧使, 정3품)가 주재했던 홍성은 예로부터 교통, 체신, 행정의 중심지요. 국방의 요새지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1759~1801, 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전해지고, 많은 교우들이 있던 곳이었다.

홍주 성지는 기록상으로 211명(또는 212명)의 순교자가 있고, 무명의 순교자까지 거의 700여 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가 많은 곳이다. 홍주 토포청(종3품의 영장 겸 토포사 관할)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에 의해 끌려온 순교자들은 갖가지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굳게 신앙을 증거했다.

순교성지로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만나는 곳의 순교자 생매장터와 최대의 순교터인 홍주옥, 순교자들이 처형되기전 조리돌림을 당하던 저잣거리, 북문교 인근의 참수터인 형장 등이 전해지고 있다.

홍덕서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가다보면 40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는 내포문화숲길을 따라 해미읍성으로 갈수도 있고 솔뫼성지로 갈수도 있다.

내포문화숲길은 산림청에서 기존 등산로와 옛길을 찾아내 전국에 산재한 자연 휴양림과 산촌 생태 마을을 연결하고 주요 노선에 등산 안내인 및 숲해설가 등을 배치해 지역 고유의 산림 생태, 문화, 역사 자원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산림문화체험 숲길 중 충남 북부지역에 걸쳐있는 길이다.

현재 숲길의 테마는 ‘원효 깨달음의 길’, ‘백제 부흥군 길’, ‘내포 역사 인물 길[동학길]’, ‘천주교 순례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길이는 330㎞에 달한다. ‘원효 깨달음의 길’은 수덕사~원효암지~가야사지~서산 보원사지~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당진나루를 연결하는 길이며, ‘백제 부흥군 길’은 광천~오서산[복신굴]~산성리[주류성 비정 지역]~광시~임존성[예산 대흥산성]~예산성~당진 백석포를 연결하는 길이다. ‘내포 역사 인물길[동학길]’은 북접 동학 농민군의 전투지와 성지를 연결하는 길로 당진 승전곡~면천성~예산 관작리~대흥관아~홍주성~덕산읍성~서산 해미읍성을 연결한다.

우리는 기획의도에 맞게 ‘천주교 순례길’을 택했다. 덕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한티고개를 넘어 해미읍성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배나드리’를 지나 양촌-여사울-합덕성당을 지나 솔뫼성지에 이른다.

해미읍성에서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처형됐다. 해미는 일찍이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 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서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 요충지로 1790년대로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을 무려 3천 명이나 국사범으로 처결한 곳이다.

서해안 일대의 고을에서 잡힌 천주교 신자들 중 지체가 높은 사대부 출신들은 모두 상급 기관인 홍주 영장 및 충청 감사가 있는 공주로 이송하고, 신분이 낮은 서민들만 자의적으로 대량 처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배나드리’(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3구)는 1817년에 해미 포졸들이 몰려와 신자들을 해미로 끌고 가서 처형한 애환을 담고 있는 교우촌이다. 또 그 이웃에 있는 ‘용머리’(현 삽교읍 용동리의 주래)는 인언민의 생매장지로, 1991년 이래 삽교 본당 신자들이 그의 순교를 기념하여 조성한 사적지가 있다.

이미 기획을 통해 많은 성지들을 돌아보았지만 이번 기획은 무언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지스런 면도 있지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와 피의 역사를 돌아보며 현재 우리 삶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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