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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언론연합 공동기획]
프란치시코 교황 방문 이후 충남도 무엇을 해야하나?
피를 뿌리며 영혼의 자유를 지켜낸 충남의 선조들
2014년 11월 12일 (수) 11:27:5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동안 ‘교황 신드롬’이 이어질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사회에 전한 메시지는 강렬했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교황은 이번 방한 일정 중, 당진시 솔뫼성지와 서산시 해미읍성 등 충남 내포지역의 주요 천주교 성지를 방문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타 종교인 또는 비종교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번 연합기획취재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충남지역에 미친 영향과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순례자의 길 조성 등 국제 관광지 조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기획됐다. ※이 취재는 충남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당진시대·내포시대·태안신문·충남시사신문·공주신문 연합기획취재팀>-편집자주

천주교 순교지는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고 역사와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당시 민중의 고된 삶과 애환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교사상과 절대적인 신분제도에 살던 민중들에게 천주교가 던진 울림은 피를 뿌리며 순교 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사의 가장 큰 중심에 충남이 있었다. 충남에는 솔뫼성지, 신리성지, 해미순교성지, 홍주순교성지, 갈매못성지, 다락골성지, 서짓골성지, 공세리성당, 성거산성지, 합덕성당, 여사울성지, 황새바위성지, 진산성지 등 13곳의 성지가 당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초기 한국 교회의 중심지로 네 곳을 꼽는다. 서울의 명례방(명동) 일대, 경기도 양근(양평) 지방, 전라도 전주와 진산 지방, 충청도의 내포(內浦) 지방이다.
그 중에서도 내포를 중심으로 한 충남의 순교역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한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각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이유는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등 한국 천주교 역사의 4대 박해를 모두 겪은 가장 참혹하면서도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충남지역언론연합(회장 진충현)은 당시 종교와 영혼의 자유를 지키다 숨진 순교자들을 돌아봤다.

■내포천주교회의 큰집 ‘여사울성지’

여사울성지는 단아하다. 이곳은 내포의 첫 신자로서 한국천주교회의 못자리를 만들어낸 이존창(1759~1801) 루도비꼬 곤자가의 생가터다.
성지에는 생가복원이나 기타 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작은 표지석만 두었다. 말끔한 잔디와 야외제대, 십자고상, 성모상, 십자가의 길이 오롯하게 자리하고 있다. 극심한 탄압에도 자신의 사명을 다한 이존창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양새다.
성지 앞 길건너에는 파스텔톤의 유럽식 건물이 있다. 2010년 건축된 여사울 성당이다. 높은 첨탑이나 십자가가 없고 정면에 ‘DOMINUS VOBIS CUM’(주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글씨만이 이곳이 성당임을 알리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임에도 생경하기보다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 포근한 느낌이다.
마을 안 깊숙이 농가들과 이웃해 있는 성당과 성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신앙의 대를 잇는 마을 신자들과 함께 오늘을 증거하고 있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예산 여사울 이존창 생가터)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22
041)332-7860, www.yeosaul.or.kr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 ‘솔뫼성지’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당진 9경 중 하나로 지정돼 있다.
지난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당진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1821~1846)가 탄생한 곳으로,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4대(김진후·김종한·김제준·김대건)가 32년에 걸쳐 순교한 ‘순교자들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지난 1946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지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순교기념비가 이곳에 세워지면서 본격적으로 성지 조성사업이 시작돼 현재에 이르렀다.
교황 방문 이전에도 솔뫼성지에는 연간 약 3000여 명의 신자들이 방문할 정도로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솔뫼성지는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주요 성지로 손꼽힌다. 특히 매년 전국의 신자들이 솔뫼성지와 합덕성당, 신리성지 등을 거치는 도보순례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솔뫼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가 개최됐으며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이 확정되면서, 교황 방문 이전부터 지금까지 예년보다 더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김대건 신부 생가지)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
(041) 362-5021

■한국 교회의 산증인 ‘합덕성당’

충청도 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지였다. 합덕 본당은 바로 내포평야에 복음을 밝힌 지 100년을 넘어서 한국 교회의 산 증인이 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합덕 본당 인근에는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자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으로 사용됐던 신리 성지가 있고, 옛 동헌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면천 사적지도 자리하고 있다.
합덕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거슬러 올라오다 보면 길 오른편에 길 쪽을 앞으로 하고 비탈길 위에 서 있는 합덕 본당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이 넘는 신앙의 경륜을 간직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합덕 본당의 전신은 양촌 성당(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데 1890년에 설립, 초대 퀴를리에 신부가 부임, 1899년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것으로 제7대 페랭(Perrin, 白文弼) 신부가 6.25 때 납치당해 순교하는 비극이 있었다. 현재 성당 옆에 있는 페랭 신부의 묘소와 함께 순교한 두 평신도의 묘소에는 유해는 없이 유물만이 묻혀 있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당진 합덕성당)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성당 2길 22
(041)363-1061
hapdeok.tjcatholic.net/hapdeok2010.htm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세리 성당’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문의·옥천·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貢稅) 창고가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칸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舊)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면서 초대에 이어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를 닦았다. 그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로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을 불러왔던 현재의 성당 건물은 그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면서 지은 1922년도의 성당이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성당이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아산 공세리성당)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041)533-8181
www.gongseri.or.kr

   
■조선의 가장 큰 신앙공동체, ‘신리성지’

주민 400여 명이 모두 신자인 마을로 기록된 곳. 신리는 조선시대 천주교 수용 초기부터 형성된 가장 큰 교우촌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해 내포를 중심으로 활동한 다불뤼 주교가 머무른 전통한옥이 옛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박해시기의 주교관이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겪으며 한 때 텅 빈 마을이 되기도 했던 신리는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가 다시 모이고, 심지어 주민 모두가 죽임을 당한 순교지다. 인근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순교자들의 묘가 순례자들의 위로를 받는다.
이곳에서 다블뤼 주교는 초기 순교자들의 행적과 교회사를 정리해 ‘비망기(備忘記)’를 작성해 파리로 보냄으로써 한국 교회사의 귀중한 사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교회서적을 집필하고 출판함으로써 근대적 출판 인쇄를 시작했다.
다블뤼 주교는 동료 선교사와 함께 주교관 인근 거더리에서 체포돼 갖은 고문 끝에 보령 갈매못에서 금요일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당진 신리 다블뤼주교 유적지)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041)363-1359
www.sinri.or.kr

■충남 첫 순교지 ‘홍주성지’

홍성 홍주성지는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곳은 충청의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자,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식에서 복자 반열에 오른 124위의 순교자 중 홍주에서 처형당한 순교자가 4명이나 포함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 성지에 4명씩이나 복자에 오른 것은 국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홍성(옛 홍주) 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784년경 내포의 사도라 불리우는 사도 이존창으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에서 서양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1784년 3월 귀국해 복음을 전파했던 것을 한국 천주교의 창설로 보는데 이때 이존창도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파하며 홍주지역에 천주교를 퍼트렸다.
홍주는 순교자가 많이 탄생한 곳이다. 212명으로 공주의 337명에 이어 두 번째 많은 지역이다. 기록상으로는 이 정도지만 무명 순교자만도 7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1호(홍성 오관리 느티나무)
충남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37
(041-633-2402)

■세계의 성지가 된 ‘해미성지’

8월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를 찾아 아시아 주교회의를 열고 해미읍성에서 6만 명의 천주교 신자 및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주례했다. 
해미읍성이 생겨난 건 1407년의 일이다. 당시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쳐 해미현이 됐다. 해미는 내포로 이어지는 중심도시였기에 11년 뒤인 1418년에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됐고, 1491년에는 돌로 성을 쌓았다. 그 읍성이 524년의 풍상을 견뎌왔다. 1651년 청주로 병마절도사영이 옮겨가기까지 160년간 해미는 내포의 중심지였으며, 그 이후에도 토포사를 겸하는 종3품 겸영장을 둠으로써 군사요충지로 남았다. 그러했기에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면서 70여 년간 해미는 피의 박해 현장이 됐다.
1989년 서울세계성체대회 이후 25년 만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진 솔뫼를 거쳐 해미성지로 향했다. 16일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주례한 김진후(비오, 1739~1814) 순교자가 나고 자란 솔뫼를 거쳐 해미의 첫 순교자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 등 3위가 피를 흘린 해미에서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주례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를 더 했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해미읍성 회화나무)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041)688-3183
www.haemi.or.kr

■박해의 시작 ‘진산성지’

진산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참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1791년 음력 5월 윤지충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 안에서 패륜의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친척과 이웃들의 고발로 윤지충과 권상연은 체포돼 그해 12월8일 전주 남문 밖(현재 전동 성당 부근)에서 참수돼 순교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지방리 출신의 김영삼이, 1877년에는 김영삼의 동생인 김 사도 요한이, 1878년에는 김춘삼 사도 요한이 순교했다.
진산은 전라도 땅이었지만 1963년 행정개편으로 충청남도 금산군에 편입됐다.
☞메모: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
(041)752-6249
jinsan.djcatholic.or.kr

■이름 없는 줄무덤에 잠들다 ‘다락골성지’

청양 다락골은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자리한 곳이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다락골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791년 신해박해의 모진 서슬에 최양업 신부의 조부(祖父)인 최인주와 그의 어머니가 피난을 오면서 시작됐다. 모자는 공토를 개간해 살림을 이어 갔는데 이때 그들이 개간했던 땅이 새터(新垈)로 점점 이웃이 모여옴에 따라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게 됐다.
최인주 슬하의 3형제 가운데 셋째가 최경환 성인으로, 그는 1821년 한국에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을 6형제 중 장남으로 얻었다. 이들은 박해 시대에 드러내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어려움을 겪던 중 신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를 했고, 그 후 다락골의 교우촌 새터 마을 교우들은 대화재의 참화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메모: 충남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길 78-6
(041)943-8123
www.daracgol.or.kr

■야생화가 만발하는 ‘성거산 성지’

경기도와 충청북도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는 성거산 성지는 천안시 북면 납안리 46-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성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발 5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지는 차령산맥 줄기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봄, 가을에는 꽃들과 단풍으로 찾아 온 순례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성거산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이 수행원들과 함께 성환 지역에 머무르면서 잠시 쉬는 동안 오색구름이 맴돌며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을 보고 ‘거룩할 성(聖)'자에 '거할 거(居)'자로 이름을 지어준 다음 이 산에서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한다. 또한 태조 이성계와 세종대왕도 온양 온천에 목욕을 하러 올 때마다 이곳 성거산에 들려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곳 성거산 성지 주변은 박해 때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인 교우촌 7개가 산재되어 있어 선조들의 신앙의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천안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041)584-7199
sgms.zerois.net

■유일한 바닷가 성지 ‘갈매못 순교성지’

서해안 바닷가에 있는 갈매못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 위앵 신부 그리고 황석두, 장주기 등 5명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1866년 3월 7일 제5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다블뤼 주교는 4일 만인 11일 그의 복사였던 황석두 루카와 함께 내포 지방에서 체포됐다. 그 후 신자들이 희생을 막기 위해 스스로 체포될 것을 결심하고 다른 동료 선교사들에게도 자수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낸 후 붙잡혔다.
다블뤼 주교 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때마침 고종이 병을 앓고 국혼(國婚)도 가까운 시기여서 서울에서 250여 리 떨어진 보령수영(保寧水營)으로 처형지가 옮겨졌다. 이들 4명과 배론 신학당의 집주인 장주기가 자진 합세하여 모두 5명이 갈매못으로 향하는 죽음의 행진을 떠나게 되었다.
성 금요일에 순교한 다섯 성인 중 황석두의 유해는 가족들이 거두어 연풍에 안장했고, 나머지 넷의 유해는 사흘 뒤 사형장 부근에 매장됐다가 홍산, 일본 나가사키, 1900년에 명동 대성당, 1960년대에 시성 시복 운동이 전개되면서 절두산 순교성지로 옮겨졌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88호(보령 갈매못 순교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041)932-1311
www.galmeamot.kr

■갈매못 순교자들의 안식처 ‘서짓골 성지’

‘서죽골’ 이나 ‘서재골’로 불리는 산골짜기 서짓골은 작은 교우촌이었고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다수 은거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보령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신도회장 장주기 등 4구의 시신이 수습돼 서짓골로 옮겨져 15년 6개월간 안장됐다.
시신이 들짐승들에게 훼손된다는 소리를 들은 20여 명의 신자가 순교자들의 시신을 소중히 여겨, 모진 박해시기의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메모: 충남 보령시 미산면 평라리 439-2
(041)836-5904(하부내포 사무실)

■천주교 박해시대의 심장 ‘황새바위 순교성지’

예로부터 황새가 많이 서식했던 곳. 또는 목에 커다란 항쇄를 쓴 죄수들이 처형당한 곳이라해서 ‘황새바위’ 또는 ‘항쇄바위’라고 불렸다.
삼남지방과 내포지역에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공주 감영으로 압송됐고, 4대 박해를 거치면서 1만여 명의 천주교인들은 배교를 거부하며 순교를 당했다. 국내 천주교 성지 130여 곳 가운데 가장 많은 천주교 순교자를 만들어 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황새바위성지에는 공주감영에서 직접 처형한 248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고 그 후에 추가로 조사된 89명을 합쳐 현재까지 밝혀진 순교자만 337명에 이르고 있다.
당시 공주에는 충청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와 감영이 있었다. 공주감영에는 ‘사학죄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황새바위에서 처형당하곤 했는데, 공개적인 처형이 있을 때면 맞은편 산 위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고 한다.
☞메모: 충청남도 기념물 제178호(공주 황새바위 천주교 순교유적)
충남 공주시 왕릉로 118
(041)854-6321
www.hwangsa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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