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권'에서는 청나라 학자와 필담을 주고받는데, 지구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연암의 벗인 홍대용이 지전설을 주장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가설들에 대해 연암의 설명은 인상 깊습니다. 당시 청나라에도 땅이 둥글다는 서양의 학설은 들어왔어도 지구가 돈다는 이론은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중권'에서는 연암이 청의 학자, 곡정과 열여섯 시간 동안 필담을 나눈 '곡정필담'이 나오는데, 백여 쪽이나 풀어놓은 조선음악이나 청나라음악에 대해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어서인지 사실 저로서는 제일 읽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역시 책읽기에도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하권'에는 연암이 북경에서 구경한 천주당, 서양화, 코끼리, 자금성과 온갖 절들에 대한 견문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단편 <허생전>이 있습니다. 글만 읽고 집안 살림에는 도통 관심 없는 허생을 통해 연암은 조선의 경제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그래서 무역의 중요성과 상업의 중요성을 이 글을 통해 강조합니다. 더불어 당대의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은 연암 소설의 백미이기도 합니다.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연암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 합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관심 어린 시선이 그를 꼼꼼한 관찰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듯이 선명하게 묘사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외국인들과는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필담을 나눕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된 것입니다. 연암은 그들과의 대화에서 예의를 갖추되 옴츠러들지 않았고,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호방한 분위기였습니다. 글 속에서 보이는 연암은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고, 새로운 문물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으며 자기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식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50여 일 동안 연암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고, 요동 땅을 만나고, 북경의 모습을 살펴보고, 18세기의 문화와 문물과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연암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여행을 한 것입니다. 비록 한문으로 써진 원본을 해석하진 못 했지만, 북한의 학자 리상호의 안내로 보리출판사가 낸 이 책 덕분에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여행을 끝냈습니다. 사다 놓고 서가에 꽂아 두고만 있다가 다 읽고 난 지금, 가파른 능선 하나 오른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