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일 동안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만났다가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을 맞이합니다. 책을 이리도 오래 읽은 것은 세 권인데다가 두께가 만만치 않은 까닭이요, 이 일 저 일로 바쁘다 보니 짬을 내서 읽어야만 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지난 50여 일 동안 저는 연암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물론 읽다가 지루하게 생각된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연암의 글들은 흥미로웠습니다. 독자는 책을 읽다가 자신이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면 더 큰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마흔네 살 때, 팔촌형이자 영조의 사위였던 박명원이 청나라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당시 사설 수원으로 동행하면서 여행한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암은 공적인 책임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몸으로 여행해서 새로운 문화와 문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를 보자면 1780년 5월 25일에 한양을 떠나 10월 27일 다시 한양에 돌아올 때까지 약 5개월간의 여행기록입니다. 물론 이 <열하일기>는 6월 24일에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북경까지, 북경에서 황제가 피서해 있는 열하, 다시 열하에서 북경에 머물렀던 8월 20일까지의 기록입니다. 글의 형식은 일기뿐만 아니라 기행문, 평론, 소설, 시, 르포, 수필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합니다. 글의 주제 또한 방대해서 과학, 기술, 정치, 경제, 천문, 지리, 종교, 음악 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 권으로 편찬된 <열하일기>는 단순히 청나라를 여행한 기행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암이 보고, 느끼고, 품고 있는 생각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놓은 흥미로운 백과사전과 같습니다.

  '상권'에서 인상적인 것은 수레에 관한 연암의 생각입니다. 청나라에 가서 수레를 보고는 조선이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가 수레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탄합니다. 수레의 기능과 구조를 설명하면서 운송 수단의 중요성과 산업 발전에 대한 의견을 펴고 있습니다. 연암은 백성들의 생활이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나아지기를 바랐던 학자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연암의 <호질>이 나옵니다. '범의 꾸중'이라는 뜻의 <호질>에서 연암은 범의 입을 빌어 인간 세상을 풍자하고 조롱합니다. 양반과 무당, 의원과 과부를 풍자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꼬집습니다. 한갓 미물인 동물들보다 인간들이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연암이 풍자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머리와 마음이 시원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