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에 스승 다산을 만난 후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을 모셨다. 잠시의 흔들림도 없다. 그의 아내는 진사 벼슬 하나도 못할 거면서 그놈의 공부는 해서 무엇 하느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래도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듯이 꾸준히 읽고 글을 쓴다. 황상은 다산이 끝까지 아낀 단 한 사람의 제자다. 황상은 배우는 자세를 효성과 우애, 충성과 신의를 바탕으로 삼았다. 다산의 강진 유배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1801년 11월 강진의 어느 주막집에 들어가 며칠 쉬는 동안 그냥 눌러 앉게 되었다. 강진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죄인 다산을 모두 두려워하여 문을 부수고, 담장을 허무는 등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괴롭히기도 했다. 일 년 정도 지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이 풀려 1802년 10월 주막집 작은 방에 서당을 열었고 열다섯 살의 황상과 대화를 나눈다.

“저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너무 둔하고, 앞뒤가 꽉 막혔으며,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배우는 사람에게는 보통 세 가지가 있다. 민첩하게 외우는 일,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일, 깨달음이 재빠른 일이다. 그런데 너에게는 그것이 없구나. 그러나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절구공이 같은 둔탁한 것으로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파다보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구멍이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느니라”

황상은 60년간 스승의 말씀을 명심누골(銘心鏤骨), 마음에 새기고 뼈에 아로새겼다고 했다. 나중에는 그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누더기처럼 되자 1854년 다산을 성묘하고 황상이 고향에 내려갈 때, 다산의 아들 정학연은 그 글을 다시 친필로 써 주었는데, 그 글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아버지가 열다섯 살의 제자에게 써 준 글을 52년 뒤에 그 아들이 다시 써 주어 아름다운 만남의 인연이 50년이나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다반사로 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은 1803년 겨울에 주막집 봉놋방 좁은 서당에 ‘사의재’(四宜齋)란 이름을 걸었다. ‘사의재’란 이름에 마땅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이다. 다산의 소문은 인근으로 퍼져 나갔다. 1808년에는 귤동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다산은 다산초당에 머물다가 아예 초당을 지어 지내게 된다. 다산이란 호는 유배가 풀린 후에 붙여졌다. 차를 좋아했기에 다산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백련사 맞은편 귤동마을 산속 정자로 옮긴 다산은 초당에서 귤동 학동들을 가르치게 된다. 여기에서 대강백 아암 혜장 스님을 만나 녹차를 알게 되고, 학문을 나누는 교류가 시작이 된다. 이후 초의선사 등과 교류를 하였으며, 추사 김정희는 정학연과 동갑으로 문단의 교류가 활발했다.

다산은 초당에 몇 개월 동안 연못을 만들고, 무릉도원처럼 꾸미는 일을 한다. 채마밭을 만들기도 하는 등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황상은 다산초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식구들을 데리고 산속에 들어가 땅을 일구며 살아간다. 농사를 지으면서 홀로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을 한다. 후에 다산은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올라가게 되어 남은 제자들끼리 ‘다신계’를 조직해서 절기 때마다 모여 계모임을 하게 된다. 황상은 다산이 죽기 얼마 전에 양평 마현이라고 하는 마재에 가서 뵙고 가는 길에 다산의 부음을 듣는다. 다시 가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른 후에 상복을 입은 채로 고향에 내려와서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