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도 대구에서 한 고등학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광풍으로 몰아치는 학교 폭력에 대해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한결같이 과도한 경쟁에 따른 인성 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파악하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선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자체의 변화 없이는 그 어떤 대책이나 처방도 눈 가리고 아웅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육하는 교사와 교육받는 학생,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비극은 무한 반복될 뿐이다.
고등학교 들어와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한 첫 도서인 『경쟁에서 벗어나 최고의 학력으로 핀란드 교육의 성공』(후쿠타 세이지, 북스힐) 표지에 ‘과외나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즐기며 최상위 성적을 내는 핀란드 아이들’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딱 우리나라와는 정반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는 핀란드 교육을 견학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15명 남짓의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실제 교사의 수업을 듣는 학생은 단 두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블록놀이를 하고 심지어는 휴대 전화로 문자를 보내는 학생까지 있었다.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말세다, 말세’라고 한탄해야 할 상황에서 교사는 아무렇지 않게 그 두 명의 학생에게 열정적인 수업을 계속 이어갔다. 학생들을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교사는, 공부를 하든, 공부 아닌 다른 것을 하든 그것은 그저 그 학생의 자율적 선택이고 책임이라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꾸중할 생각은 없다고 대답한다.
바로 그것이었다.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제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다수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고 학습에 매진한다고 한다. 핀란드 교육에 경쟁이 없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고, 그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경쟁이 없으면 도대체 무엇을 동기 삼아 학생들을 공부시킬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고 하는 공부와 누구나 공부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 열심히 공부시키니까 할 수밖에 없는 공부. 전자는 자신이 세운 목표와 성취가 중요하지만 후자는 자신을 공부시키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성과가 중요하다. 똑같이 공부를 하더라도 누가 행복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핀란드 학교교육의 핵심은 한 마디로 자유로움이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무질서한 방임이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행복한 학교생활이 되도록 하며 공부도 그 선택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공부를 선택한 학생들이 가정의 경제력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대학까지 완전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성취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높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인구 500만의 작은 국가 핀란드가 세계 일류의 휴대전화 기업 '노키아'를 일궈낸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와 내 친구들은 공부한다고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밤늦은 시각까지 열람실 의자에 앉아 있다. 정말 우리 모두는 공부를 좋아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이 공부이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공부라는 깨달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내 주변에는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하고, 공부보다는 미술에 더 재능이 있고, 자동차 정비 기술자가 되고 싶지만 공부가 아니면 낙오자 대접을 받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고행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이다.
어느 휴대전화 광고에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틀 안에서 그것을 유지시키며 살아갈 때, 어떤 사람들은 정해진 틀을 부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틀 안에서의 작은 변화가 아닌 잘못된 틀을 과감히 부숴버리는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인권 조례 제정하고 체육 시간 늘리는 것이, 경쟁으로 피폐해진 학생들의 마음에 행복을 줄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학생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장소, 그 곳이 바로 학교여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절대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이 될 수 없으므로 요즘 같은 학교 폭력이니, 교권 침해니 하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되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