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일까?
 MBC 파업이 벌써 120 여일을 넘어섰다. 나는 MBC 노조의 파업이 진실보도를 위해서라기에 지지한다. 파업을 포기한 배현진 아나운서의 ‘사실과 진실의 촘촘한 경계를 오가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라는 변명을 읽었다. 그녀가 괴롭게 오고 간 사실과 진실의 경계가 도대체 무엇일지 궁금하다. 기자는 한 단면만을 보고 객관적 사실만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 다각적으로 살펴 본 후 분석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역사가도 마찬가지이다. 내 어린 시절의 역사 교과서에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의 난으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사태로 기록 되었다. 그 사실이 진실인 줄 알았다. 그렇게 기록한 역사가에게 사실과 진실의 경계는 정치적 의도였을 것이다. 암베드카르 평전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인도 역사의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암베드카르, 달리트의 인권투쟁에 나서다.
간디는 위대한 민족해방지도자이다. 그런데 암베드카르를 만난 후 간디가 진정한 민족해방지도자이며 개혁가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되었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라며 간디를 진정한 개혁가로 보지 않았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잔이라 부르며 불가촉제의 폐지에 힘썼다. 반면 암베드카르는 하리잔의 명칭을 거부하고 달리트라 부르며 신분해방에 앞장섰다. 하리잔은 신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동정의 의미가 담겨있다. 달리트는 몰락한 사람의 뜻으로 해방적 의도를 담고 있다. 독실한 힌두교도인 간디는 힌두교라는 사회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평등 사상을 도입하고자 애썼다. 암베드카르는 힌두교가 카스트제도에 묶여 있기 때문에 힌두교에서는 신분해방과 평등은 없다고 했다. 암베드카르는 카스트의 최하위계층인 달리트였기 때문에 달리트가 받는 핍박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카스트 차별이 모든 영역에 존재하고 그 차별은 경제적 낭비와 인간에 대한 경멸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했다. 그러한 것들을 척결하는 일이 암베드카르의 평생 과업이었다.

최초의 대규모 불가촉천민 대중투쟁은 식수권 문제에서 폭발했다. 식수권은 가장 기초적인 인권이지만 달리트에게는 식수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암베드카르는 달리트의 식수권을 확보하기 위해 마하드 저수시설에서 사티아그라하(비폭력저항)를 전개했다. 그는 마누법전을 불태우며 공공장소와 공공시설을 대등하게 사용하는 문제를 달리트에 대한 차별을  종교에서 비롯된 차별로 연결 시켰다. 불가촉천민을 힌두교 틀 안에 유지 시키려는 간디의 노력을 맹렬히 비판했다. 또한 암베드카르는 아리안 족의 침입으로 카스트가 생겨났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구 학자의카스트의 기원에 대해 그대로 믿고 있던 나는 또다시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간디와 같은 상층 카스트민족주의지도자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싸웠다. 암베드카르와 같은 하층 계급은 영국 뿐만 아니라 상층 카스트민족주의자들도 싸워야 할 적이었다. 달리트들이 원하는 자유, 평등 사회를 얻기 위해서는 독립과 신분 해방이 선결 조건이었다.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각자 다른 길로 갔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온정주의적 입장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종교적 박해로부터의 보호라고 주장했다. 암베드카르는 달리트에 대한 권리 부여와 정치적 보호를 강조했다. 참된 종교는 인간에게 똑같이 권리를 부여하고 평등하게 여긴다. 인간을 여러 계급으로 나눠 차별하는 종교는 참된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카스트가 존재하는 힌두교를 거부한 암베드카르의 사상에 동조한다. 상층 카스트나 달리트나 모두 천부인권을 부여받은 같은 인간이다. 힘센 자가 만든 계급 안에서 힘센 자에게 보호받고 동정 받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받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