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맴맴매~~~~
비가 그친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6월의 매미는 힘차게 울었다.
비그친 하늘을 올려다보니 괜스레 감상에 젖어 울적해진다.
집을 나와 거리를 걷노라니, 학교가 끝난 초등학생들이 색색이 우산을 자랑하듯이 치켜들고 삼삼오오 집으로 향한다.
‘그립구만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미 거기엔 어릴 적 내가 있었다.
19XX년 3월 X일 흐림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주워온 자식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엄마를 나도 싫어합니다. 미워요. 내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지 않구…….’
어릴 적 내 집은 유복하지 못했다. 태어났을 때 보기나 했을까.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일찍 여윈 아버지를 원망하기에 바빴다.
즉,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소리이다. 덕분에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고 생전에 아버지가 벌어놓은 돈이 조금 있었으나 그나마 잠시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는 어렵게 나를 키우시며 둘뿐인 가족은 근근이 먹고살고 있었다.
“내일, 학교가면 선생님께 예의 있게 인사하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그리고......”
어머니는 머뭇거리며 잠시 쉬시더니 말을 이으셨다.
“이거, 네 신학기 들어가면 사준다고 했던 가방이다.”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시며 방에서 가방 하나를 가지고 나오셨다.
 “에? 뭐예요. 이게? 이딴 걸 누가 써!”
그 손에 들려있던 가방은 새 가방이라고 하기엔 빛이 바랬다. 게다가 온통 분홍색이었고 가방 겉면 중앙에는 여자애들이나 좋아할법한 리본을 맨 하얀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지 말고 한번 메봐. 가방인데 여자남자 구별해서 쓰니?”
“사내아이가 이런 걸 어떻게 메고 다녀? 그리고 난 중학교 1학년인데!”
난 정말 그 가방이 싫었다.
“이 가방 말고 원래 내가 쓰던 헌 가방 줘!”
“그건 너무 낡아서 이미 버렸는데, 그냥 새 가방 메고 가보렴.”
우리 집 형편을 알고 있던 나는 마냥불평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알겠어. 그럼 빨리 새 가방 사줘야 돼? 그 때까지만 메고 다닐 테니까.”
“알겠으니까 학교 다녀와.”
“알겠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좋지 못한 기분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씨도 안 좋고, 뭐야, 이게?”
그렇게 투덜거리며 집에서 우산을 가지고나와 학교에 가는데 다른 중학교 애들이 보였다. “와, 멋지다!”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있는 애가 있는가하면 멋진 자동차가 그려진 가방을 멘 애도 있었다.
‘부끄럽다. 내 가방…….’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학교로 갔다. 비가 아까보다 더 쏟아졌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애들이 있는가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뛰어놀고 있는 애들도 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않았는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쟤 좀 봐. 뭐 저런 유치한 가방을 메고 있지?”
나를 보고 자기네들끼리 웃었다. 정말 창피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이 상해서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올 1년 동안이 반을 맡게 된 김숙자에요. 모두 잘생긴 친구들만 있네요.”
거기까지만 말씀하시고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거기, 오른쪽 맨 뒤에서 두 번째 친구, 가방이 참 예쁘네요.”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에 있던 애들이 모두 교실이 터져나가라고 크게 웃어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말을 내가 들어버렸다.
“쟤 혹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 아니니? 엄마가 저런 가방이나 사주고…….”
난 참지 못하고 끝내 울어버렸다.
“모두들, 조용히 하세요! 그만 웃고 조용히 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이 날 더 작게 만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애들이 내 가방 얘기만 하는 거 같아 괴로웠다. 수업 시간 중에 집중도 못하고 공책에 일기를 썼다.
19XX년 3월 X일 흐림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주워온 자식이기 때문이겠죠. 그런 엄마를 나도 싫어합니다. 미워요. 내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지 않구......’
그래도 울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사무쳤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교 뒤 소각장으로 달려가 그 앞에서 가방을 패대기쳤습니다. 비가 오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가방을 때리고 밟았다.
“에잇! 이딴 가방. 이딴 가방......”
그리고 어느 정도 분이 풀리자 그걸 소각장으로 집어던져버렸다. 그리고 집까지 무작정 달렸다. 어느새 날씨는 더욱 안 좋아져 천둥도 치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를 불러 짜증을 냈다.
“역시 그딴 가방 메는 게 아니었어! 엄마 바보! 미워!”
“…….너, 가방은 어쨌니?”
“몰라! 그딴 가방 소각로에 넣어버렸어!”
그 순간 내 왼뺨에 고통이 내달렸다. 난 얼얼해진 뺨을 잡고 크게 울면서 어머니께 소리 질렀다.
“뭐야! 뭔데! 왜 때리는 거야? 나쁜 건 엄마인데…….”
“바보가!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슬프게 우시기 시작하셨다. 도리어 당황한 나는 같이 울며 소리쳐 물었다.
“왜 울어, 엄마?”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이야기를 꺼냈다.
“너한테는 누나가 있었어. 너보다 한 살 많은 그리고 그 가방은 평소 바라는 것 없이 착하기만 했던 네 누나가 처음으로 보고서 갖고 싶다고 말했던 거라고! 그 누나는 중학교 입학식 일주일 전에 그 가방을 메보지도 못하고 교통사고로 죽었단 말이야.”
아아, 그 순간의 충격이 내게 어떠했는지 기억에 없다. 그걸 알려주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먼저였는지. 내가 한 일에 대한 후회가 먼저였는지 표현할 길이 없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평소 딸을 많이 사랑했던 네 아버지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마음의 병을 얻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노동판에서 일을 하시다가 너무 힘드셔서 그로 인해 돌아가신 줄 알았다. ‘죄송해요, 아버지 원망만 했어요.’
후회와 슬픔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이 흘렸다.
“어머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비오는 날, 모자는 서로를 부여잡고 울었다. 눈물이 멎을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작은 방, 작은 창문으로 햇빛이 조금 들어오는 것 같았다. 차가운 느낌에 정신을 차리니 다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다시 오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기억 속에 나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노라니, 지치지 않는 6월의 매미가 비가 온다고 다시금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