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더운 여름 후덥지근한 숨을 몰아 쉬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는 술에 취해 계셨다.
알싸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파리마저 취한 듯 제자리만 빙빙 돌고 있었다. 기분이 우울해진 나는 잠들어 있는 아빠가 미워서 일부러 쿵쿵거리며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든 말든 아빠의 코고는 소리는 한여름의 정적을 깨고 지붕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늘 그랬다. 작은 시골에서 농사를 크게 짓던 아버지는 잇단 실패로 절망하셨고, 취해 계셨다.
거친 말을 해대며 동동 걸음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는 엄마를 보고서도 아버지는 취해 계셨다.
물론 오빠를 비롯해 나, 여동생에게도 별 관심이 없으셨다. 내가 몇 학년인지 공부를 몇 등이나 하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셨다.
엄마는 바쁘셨고, 나는 늘 동생과 함께 놀았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아빠 자랑을 할 때는 모른 체하고 책만 들여다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급히 학교를 오느라 미술 준비물을 챙겨 나오지 못한 날이었다. 그 날은 선생님께서도 준비물을 꼭 챙겨오라며 재차 주의를 준 바로 다음날이었다.
학교에 들어선 나는 혹시나 아빠가 내 준비물을 가져다주실까 조마조마하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따스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엄마, 저 민희데요. 깜빡 잊고 준비물을 안 가져 왔는데 어쩌죠?”
“아빠한테 한번 물어볼게. 바쁘신 것 같긴 한데, 말씀 드려보마.”
뭐, 대단한 기대도 안했으니까, 바쁘시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우리 아빠는 늘 그랬으니까. 안 오셔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1교시가 지나고, 2교시 종이 쳤다. 누군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들이 조금씩 웅성거리자, 선생님께서는 복도를 나가셨다. 3학년 교실 뒷문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민희야, 아버지께서 오셨다.”
선생님의 등 뒤에는 아빠가 서 계셨다. 놀란 표정을 애써 숨기며 나는 복도로 뛰어 나갔다.
아빠는 여지껏 본 적 없는 얼굴로 밝게 웃으며 그렇게 서 계셨다.
‘아! 우리 아빠가 오셨다.’고 감격하고 좋아하는데
 “준비물 여깄다. 그런데 너 언제 4학년이나 되었냐? 난 3학년인줄 알고 3학년 교실에서 한 참 헤맸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너무도 서운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관심 없어도 내가 몇 학년인지 정도는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3학년이라니,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되는 말까지 하셔서 나를 부끄럽게 하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빠, 진짜 너무해………….”
속이 상한 나는 목 놓아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당황하신 선생님이 수업이 시작되었다며 황급히 내 손을 잡아 끄셨고, 나는 5km의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아빠를 그렇게 등 뒤를 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온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아빠가 가셨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엉엉 울며 아빠가 3학년 교실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며, 내가 얼마나 서운했을지 생각해 보라고 하소연과 함께 이르기에 바빴다.
아빠는 어디 가셨는지 마당에는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억지로 감고 힘겹게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민희야! 일어나!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
속이 이렇게나 상했는데 선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실눈을 뜨며 일어나자 내 눈 앞에는 새빨간 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디서 산건지 알지도 못할 이상한 영어에 땟물이 잔뜩 묻어 있는 가방이었다.
“어제, 니가 너무 많이 속상해 하는 것 같다고, 아빠가 네 기분 풀어준다고 사 오신거야.”
맘에 들지 않았다.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촌스런 빨간색에 메이커도 없는 시장 통 가방 따윈 가지고 다니고 싶은 생각 털 끌만큼도 없었다. 심마니나 가지고 다니면 어울릴 법한 가방. 이런 걸로 내 맘을 풀어주려는 아빠가 너무 야속했다.
어제 그토록 많이 울었는데도 내 눈물샘은 얼마나 깊은지 다시 눈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때였다. 일찍 논물을 보고 오신 아빠가 하얀 웃음을 지으며,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새로운 가방을 내밀었다.
“맘에 들지? 시장에서 잴 비싼 거루 다시 사왔다.”
순간 머릿속이 까맣게 되면서 꺼져 버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써서 오셨는데,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5km를 달려왔는데, 나는 엉엉 울며 고맙단 인사말 하나도 안 하고 …………. 다시 내 기분 풀어 주겠다며, 읍내까지가 가방도 사 오셨는데, 나란 딸은 왜 이 모양인지 …………양심이 찔리면서도 나의 생각 없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응석받이 철없는 어린 딸로 이해 받고 싶었다. 난 아빠 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울며, 죄송하단 말만 되뇌었다. 아빠는 그런 내 속을 아시는지 빙그레 웃으며 말씀했다
“그렇게나 좋으냐? 니 가방 낡은 걸 어제 학교 가서야 봤지 뭐냐?”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나를 보자 아빠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타고 넘어갔다.

세월이 지나고, 더 이상 아빠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어느 날. 7년이나 된 빨간 가방은 세월이 묻어 원래의 빨간색을 잃어버렸다. 대신 손때와 먼지만 묻어 초라한 행색을 더 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때까지 그 빨간 가방을 메고 다녔다.
친구들은 유명 브랜드의 신제품 가방을 해마다 바꿔가며 메고 다녔지만, 나는 그 가방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 하나 나에게 남아있는 아빠의 사랑이었고, 아빠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무거운 책만 넣고 다녀서인지 가방은 곧 어깨끈이 떨어졌고, 여러 번의 수선을 거쳤지만, 다시는 그 가방을 살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가방을 장롱 속 깊이 넣어두며 아빠의 흔적을 간직했다. 그 속에 담겨있던 아빠의 마음을 생각했다. 나의 지난 시절을 생각했다. 아빠의 눈물을 생각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빠의 웃음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빨간 가방을 넣어두며, 나는 유년의 나를, 나와 함께 했던 아빠를 덮어 두었다.

작년에는 예쁜 딸을 낳았다. 아빠 없이 시집 간 내가 못내 측은하셨던지 엄마는 빨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길 바라셨다. 결혼한 지 일 년 반 만에 얻은 아이는 나를 닮았는지 고집도 세고 말도 잘 안 듣는 것 같다. 큰 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딸을 보신 엄마가 우스으며 한마디 보태셨다.
“어미애비 속 썩이는 걸 보니 주워오지는 않았나 보다”
뜨끔해진 나는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엄마나 나나 둘 다 그 일을 떠 올렸다는 걸 엄마의 눈가를 보고 알 수 있다.

수 없이 쌓여있는 장난감 더미 속에서 딸이 해맑게 웃고 있다. 아기의 웃음을 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저 많은 장난감이 아기의 추억 한가락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넘쳐나는 물질들이 우리 아기에게도 아빠의 빨간 가방처럼 의미 있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수 없이 생각을 해 봐도 아빠에게 상처를 준 나의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기에 언제까지나 내 주위를 맴돌 것이다.

아기가 돌이 지났다. 이제 곧 아장아장 걷게 될 것이다. 산으로 들로 걸어 다니게 될 것이다. 그 때 메고 다니라고 빨간 가방 하나를 사 주었다. 작고 앙증맞은 토끼가 달려있는 빨간 가방이다.
이 가방에 내 마음이 담겨 아주 오랫동안 우리 아기를 보살필 수 있기를 기대를 해 본다. 내가 아버지를 느끼듯이 그렇게 아기가 나를 느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