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려 할 때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주제에 대해 10여 권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막상 책에 대한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려고 하면 선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독자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써야 할지, 책의 내용이나 관점에서 써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그저 읽은 느낌만을 써내려가야 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은 책은 정민 교수의 ‘일침(一針)’이다. 정민 교수는 한양대 국문과 교수이면서도 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썼다. 그 중에서도 ‘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많은 이들이 즐겨 읽는 책이기도 하다. 정민 교수의 글은 재미가 있다. 역사의 인물을 통해서 주는 가르침이 오늘 우리에게 시원하게 다가온다. ‘일침’은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마음의 표정, 2부는 공부의 칼끝, 3부는 진창의 탄식, 4부는 통치의 묘방에 대해서 썼는데, 각각 4자성어로 해서 25개씩 총 100개의 장으로 글을 썼다. 하나의 장이 두 쪽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촌철살인의 내용이 들어 있어서 읽는 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25개의 장은 번호도 없다. 그저 읽고 싶은 대로 아무 거나 읽으라는 저자의 뜻이다.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읽으면 된다.
 저자는 정신이 몽롱할 때 ‘정문일침’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한 바늘 끝에 막혔던 혈도가 풀리고,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되돌아오는 것을 그렸다. 또한 옛 글에 비추어 오늘을 읽으려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00장에 이르는 내용을 예서 다 말할 수는 없어 몇 개만 추려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내용을 몇 개 뽑아서 이 글을 읽는 이들과 함께 저자의 마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나. 소동파의 ‘승천사의 밤 나들이’란 글에 “원풍 6년 12일 밤이었다. 옷을 벗고 자려는데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기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승천사로 가서 장회민을 찾았다. 회민 또한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다. 서로 함께 뜰 가운데를 거닐었다. 뜰 아래는 마치 빈 허공에 물이 감겼는데, 물속에 물풀이 엇갈려 있는 것만 같았다. 대나무과 잣나무의 그림자였다. 어느 밤이고 달이 없었으랴. 어디엔들 대나무과 잣나무가 없겠는가? 다만 우리 두 사람처럼 한가한 사람이 적었을 뿐이리라”. 멋진 만남이다. 말이 필요 없는 일생에 단 한 번, 딱 한차례의 만남이다. 이런 만남이 우리에게 있을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다.

 둘, 어떤 사람이 야생 거위를 잡아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가 뚱뚱해져 날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거위가 음식을 먹지 않고 굶었다. 한 열흘 쯤 굶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호 이익은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고 했다. 이 글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좋은 줄 알고 가졌던 것들이 내 몸을 무겁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들며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 몸에 진짜 필요 없는 것들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버릴 때 자유가 있다. 버릴 때 기쁨이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셋, 남계우(1811-1890)는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수백 수천의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우고 그림을 그렸다. 실물을 유리에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했다. 노란색은 금가루를 쓰고,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정확해서 나비학자 석주명은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분할 수 있었다. 석주명은 제자들에게 늘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에 10년 이상 꾸준히 몰입하면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십년유성(十年有成)! 무엇을 하든 10년은 해야 이룰 수 있다. 이런 끈기로 10년은 전념해야 목표로 한 일을 이룰 수 있다.

 넷,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남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내 집을 망치고, 여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 그러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죄다. 당장에 편한 대로 은애(恩愛)하다가 무궁한 근심과 해악을 남긴다.”고 했다. 망아지는 길들여야 쓸 수 있고, 나무는 가꾸어야 재목이 된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대로 두는 방임형의 부모가 있다. 교육도 방임형으로 한다고 한다. 이덕무의 말씀을 새겨야 한다. 이집트의 속담에 아이들은 등에 귀가 있다고 한다. 회초리로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다. 교육은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바른 길을 가도록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다섯, 유만주(1755-1788)는 “대기만성이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못난 선비들을 함정에 빠뜨려 죽였던고”라 했다. 가진 재능이 없고 남다른 노력도 않으면서 평생 입신출세의 허망한 꿈에 매달리는 인생들을 조소한 말이다. 요즘에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마치 자기 아이들은 천재나 되는 듯이 착각하고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본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을 때려 치웠다고 나도 같이 그 길을 갈 수는 없다. 절대로 그 길로 가면 안 된다. 천재가 가는 길을 둔재가 간다고 똑같아 질 수는 없다.

 100개나 되는 내용 중에 다섯 개만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가르침을 주는 내용은 더 많다. 하나하나 다 귀중한 내용이요, 가르침이 있다. 선조들이 생각했던 내용들이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내용들을 추려내어 간결한 글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예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나하나에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많이 축약해서 전해 주기에 그 배경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이름과 생몰연대를 써 놓았기에 시대적 배경은 알 수 있으니 독자를 위한 배려는 제대로 한 셈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고, 선현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기쁨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