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주의적 기독교의 원류
 문목사의 정체성은 바로 ‘민족주의적 기독교’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적 기독교는 어떻게 우리 역사속에서 생겨났을까?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1899년 2월 28일 관북의 巨儒들이 가족을 이끌고 북간도로 집단 이주한다. 구성이 네 가족 141명이 된다. 만주는 청나라시대에 황족들이 자신들의 원류인 곳을 신성화시키기 위해 봉금정책을 유지해 오다가 1883년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그 정책을 철회한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만주에  그들이 기울어진 나라를 등지고 나라의 앞날과 후세의 교육을 위해 집단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주를 분명하게 기록에 남긴다. 첫째, 간도는 비옥한 곳이다. 둘째, 계속 방치하면 남의 땅(중국)이 된다. 셋째, 그곳에 공동체를 만들어 나라를 일으킬 인재를 기르자.
 이들 집단에 다섯 살 된 문익환의 어머니와 조부와 외가가 끼여 있었다. 그들은 용정에서 30리 들어간 명동촌에 자리를 잡고 땅을 개간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서당을 차려 자손들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당시의 교육자들은 근대적 학문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공자, 맹자의 이상과 도덕관만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인재를 키우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1908년 4월 27일 서당 세 곳을 해체하여 학교를 세우고 학생을 모았지만 이들을 가르칠 선생이 없었다. 일년여의 물색 끝에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민족교육에 관심이 많은 23살 청년이 용정에 와 있음을 알고 마을 어른들이 그를 찾아가 부탁을 한다. 그는 애초에 봉급이나 대우에 관심이 없었고 다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 정규 과목으로 성경을 가르치게 한다면 내일 당장 수업을 시작하겠다!"
 이런 제안에 마을 어른들은 학교에 모여 꼬박 사흘을 토론하고 결론을 낸다.
 " 좋다. 제사를 못 받아도 하는 수 없어. 교육이 우선이야"
이렇게 해서 수업을 받게 되는데 그들 중 한사람이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이다.
 첫 6개월 동안 당차게 수업을 진행시킨 그 청년은 어른들에게도 예배를 볼 것을 요구하게 되는데 마을 어른들은 강하게 반발하게 된다. 그러나 그 젊은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 기독교와 신문명을 수용하지 않으면 민족의 앞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당시 마을의 어른이자 이론가인 김하규(문익환의 외조부)가 반론을 펴기를,
 "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고 슬퍼하면서 왜 조상님께 절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인간 예수가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일 수 있는가?"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결국 유능한 젊은 교사를 잡기 위하여 김하규어른만 제외하고 모두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 이후 그 청년이 쟁쟁한 선생들을 초빙해 오는데 역사학자 황의돈(최초의 여판사 황윤석의 부친), 한글학자 주지영, 주시경의 '우리말본'을 썼던 박 태환, 와세다 대학출신의 법학자 김철 등이 그들이었다.
  처음의 그 청년은 민족교육학자 정병태이었고 그는 이 동휘, 안창호, 김구ㅡ전덕기, 양기탁 등이 활동한 신민회의 지령으로 북간도의 망명촌 기지 건설과 민족교육을 위하여 비밀리에 북간도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그가 서전서숙(1906년 10월에 북간도 최초로 들어선 신식학교, 이상설이 세움)의 재건을 시도하다 여의치 않자 신중하게 접근한 것이 명동학교였다. 한마디로 당시 최고의 조선 인재들이 북간도로 몰려들었고 그 교육의 수혜를 명동학교가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 학교 출신들이 기독교도가 되고 독립운동으로 나갔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문익환도 이 학교 출신이고 그의 학우가 윤동주, 송몽규 등이었다.

■ 명동촌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
 그러면 당시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기독교가 민족의 독립을 구현할 시대정신의 발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민경배가 쓴 '한국의 기독교회사'에는 " 근대 한국의 비극과 시련, 그리고 좌절감이 엄습할 때 백성이 돌아서서 기댈 곳이라고는 교회밖에 없었다."라고 쓰여 있다.
 고려공산당을 창건한 이동휘도 애초에 북간도에서 목회활동을 했던 분이다. 그가 명동교회에 와서 부흥회 때 설파한 내용이 이렇다.
 " 무너져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예수를 믿어라! 예배당을 세워라! 학교를 세워라! 자녀를 교육시켜라! 그래야만 우리도 서양문명처럼 잘 살 수 있다. 삼천리강산 한 마을에 교회와 학교를 하나씩 세워, 삼천 개의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는 날 우리는 독립될 것이다."(문영미,나의 할머니, 김신묵의 살아온 이야기에서)

■ 그 형형하고 굳센 모습의 인생전거
나는 문익환목사가 태어나기전의 이 일화가 바로 문익환목사를 만들어 낸 인생전거라 생각한다. 800페이지에 이르는 평전에 쓰여 있는 巨人의 발자취를 힘겹게 따라 가면서 그 형형한 기운과 굳센 모습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면서 앞으로 후배들, 자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아야할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저자 김형수 작가의 기가 막힌 수사를 접하는 것이고  시대의 매듭을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평전의 흐름과 무관하게 우리 시대의 역사를 생각하며 비감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문익환이라는 우리 시대 巨人을 따라 한국현대사를 산책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이 책을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