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갖는 느낌이지만 세월이 빠름을 아쉬워하는 시기이다. 2012년도 달력을 한 장 넘겨 벌써 2월이 되었다. 입춘(立春)과 정월대보름이 바로 엊그제였다.

 입춘은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의미로 절기의 새로운 시작이다. 옛사람들은 입춘은 정월(正月), 즉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있어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니 집안을 청소하여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새 기운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춘대길(立春大吉)’ 같은 글씨를 써 붙였다. 입춘이 되면 매서웠던 북서풍은 점차 잦아들고 동풍이 불어 얼어붙은 땅을 녹이니 농가에서도 농사준비를 시작할 때다. 아낙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사내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손질하며 한 해 농사에 대비했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입춘한파(立春寒波)’라는 말로 생겨났듯이 올해도 유례없는 강추위로 봄의 문턱을 위협했다.

 입춘과 함께 정월대보름도 휘영청한 보름달과 함께 지나갔다.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올 한 해 시험이다, 승진이다, 결혼이다, 당선이다 해서 행운이 필요한 사람들은 행사장을 찾아서 대보름달이 주는 넉넉한 기운으로 바라던 바를 기원하였으리라.
 예년에 비해 덜한 것 같지만 대보름엔 ‘○○○척사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필자는 척사대회라 해서 아는 한자로 미루어 짐작해서 간사하고 악한 무엇인가를 척결하자는 뜻으로 ‘궐기대회’ 비슷한 것으로 혹은 네 개의 윷을 투척하니 척사인가라고 미루어 짐작하였는데 척(擲)은 ‘던질 척’이고 사(柶)는 ‘윷 수저’를 뜻함을 이번 보름에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윷놀이 대회’로 바꾸어 부르면 어떨까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농가월령가>에 나와 있듯이 대보름은 그야말로 먹고 즐기며 한 해의 안녕을 비는 날이다. 잔치가 흥겨운 것은 맛난 음식이 넘쳐나기 때문이기도 하니, 대보름은 봄 농사를 앞두고 기력을 보충하는 날이기도 했다.
 대보름 절식(節食)의 대표적인 것은 오곡밥이다. 쌀, 조, 수수, 팥, 콩을 섞는 오곡밥은 풍년농사를 비는 뜻이 담겨있어 ‘농사밥’이라고도 한다. 오곡의 종류는 지역마다 차이가 나서 수수나 팥이 나지 않는 지역은 보리와 기장을 넣어 먹기도 했다. 이 오곡밥은 여러 집의 밥을 먹어야 여름에 더위를 안 먹는다 해서 아이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밥을 얻거나 훔치거나 해서 먹기도 했는데 이런 풍습을 ‘조리밥’ 또는 ‘백가반(百家飯)먹기’ 라고 했다. ‘쥐불놀이’와 함께 기억이 새롭게 떠올려지는 얼마 전까지 흔했던 풍습이다. 호두, 밤, 은행, 잣 등의 견과를 어금니로 깨무는 ‘부럼 깨기’도 대보름에만 있는 음식 관련 풍속이다. 부럼은 한 해 동안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齒)를 튼튼히 하게 깨물었는데 올해엔 치솟는 물가가 대보름 장보기가 부담스러웠다한다.
 보름의 풍속보다 얼마 있으면 다가오는 ‘밸런타인데이’가 기업의 상혼과 상술에 고정적인 절기와 기념일처럼 치부되는 현실에 착잡해지는 마음이다.
 휘영청 밝은 달에 소원을 비는(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정월대보름은 ‘나물명절’로 불릴 만큼 나물을 많이 먹는 날이다. 또, 음식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라 대보름날 아침에는 ‘귀밝이술’이라 해서 남녀노소, 부자지간에도 함께 술을 마신다. 이외에도 줄다리기,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액연 날리기 등 알려진 것도 많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별난 풍속들도 많이 있는데, 살펴보고자 한다.(최상수 선생의 <한국의 세시풍속> 참조)
 짚이나 헝겊에 벼·보리·조·기장·수수·콩·팥 등 갖가지 곡식을 싸서 장대에 매달아 높이 세우는 것으로 풍년 농사와 풍부한 식수·농업용수를 기원하기 때문에 들판·우물가·마당·외양간 옆 등에 세웠다.(볏가릿대 세우기)
 답교(踏橋)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때 크게 성행했다. 이날 다리를 밟으면 1년 동안 다릿병이 없고, 열두 다리를 밟으면 1년 열두 달의 액을 면한다고 해서, 남녀노소·상하귀천 할 것 없이 다리 밟기를 했다.(다리밟기)
 대보름날 새벽에 부인들이 닭이 울 때를 기다렸다가 서로 앞 다퉈 우물물을 긷던 풍속으로, 맨 먼저 물을 긷는 사람이 그해 농사를 가장 잘 짓는다고 믿었다.  우물에 낳고 간 용의 알을 뜬다는 뜻.(용알 뜨기)
 대보름 전날 밤 부잣집의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 마당에 뿌리거나 부뚜막에 바르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부잣집의 복도 함께 따라온다고 여겼다.(복토훔치기)
 유실수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둠으로써 그해에 과실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풍속이다.(나무시집보내기)
 부인들이 단골 무당을 청해 가신과 여러 잡신들을 위로하며 집안의 평안을 비는 것이다.(안택)

 ‘대보름’은 질펀하게 마시고 먹고 즐기면서 한 해를 기원한 풍습이 절절이 배어있다. 인심도 후했고 인사성도 그날 만큼은 밝았고 상스런 욕설도 자제했고 ‘나눔의 풍속’ 그 소박함이었고 너나없이 즐겁고 편한 날이다.
 <나눔과 협동과 훈훈한 인간관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도 대보름의 전통에서 배우는 요즘의 시대적 좌표로써 전혀 부족함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