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중심축으로, 전국토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있다. 가히 전국이 1일 생활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도로망 확장과 자동차 증가에 비례하여 교통사고도 늘고, 소중한 목숨을 잃거나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운전자와 운전자, 운전자와 보행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공동약속인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운행은 중대한 위험이 내재된 행위이므로 운행자나 보행자 모두 법규준수는 물론 안전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하 교통사고와 관련 책임분산 원칙인 ‘신뢰의 원칙’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법률은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다양하게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여 사고를 내는 경우 운전자에게 법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교통사고 발생에 있어서 피해자나 제3자에 의한 법규위반 등 이상행동이 개입되었을 때에도 운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제반사정에 비추어 그와 같은 이상행동이 없을 것이라고 운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운전자의 과실 책임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운전자는 타인이 교통질서를 준수할 것으로 믿으면 되고, 타인이 교통질서에 위반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상하며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또는 육교 밑을 보행자가 무단 횡단하거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위반을 할 것 등까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하여 운전자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자동차전용도로를 운행하는 자동차 운전자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가 나타날 것을 미리 예상하여 급정차 할 수 있도록 대비하면서 운전할 주의의무는 없다 할 것이고, 따라서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도로에 앉아있는 피해자를 충격하여 사고를 발생시킨 경우에 있어서 그 피해자를 발견하는 즉시 제동조치를 취하였다면 피해자와 충돌하지 않고 정차할 수 있었다거나 또는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있었는데도 자동차의 조향장치, 제동장치 그 밖의 장치를 정확히 조작하지 아니하고 운전하였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자동차운전자에게 업무상 주의의무를 태만히 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96다22525 손해배상).라고 판결하였다. 신뢰의 원칙은 편중된 운전자의 과실 책임을 제한하고, 보행자의 현저한 신뢰위반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다. 보행자는 본인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항상 안전에 집중하고,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