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는 한복을 입고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작은 의자에 앉아있는 단발머리의 소녀상(평화비)이 시민단체의 모금으로 아담하게 세워졌다.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지난 14일까지 1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국어 영어 일어로 새겨졌다.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시민단체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와 책임이행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를 20년 가까이 빠짐없이 진행해왔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배경은 상해사변(1932)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의 강간행위가 빈발하자 그 대책으로 한 일본군 중장(오카무라)이 나카사키 지사에게 군대 위안부 유치를 요청했는데 이것이 공식적으로 전쟁터에 위안부를 끌어들인 첫 시기로 나타난다. 그 후 1937년 남경대학살 때 일본군이 일반 시민을 강간하는 포악한 행위가 드러나자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본격적인 종군위안부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여성이 전통적인 유교 교육 등으로 성병의 위험이 없으리라는 판단으로 미혼의 조선여성을 종군 위안부의 적절한 대상으로 정했다. 근로 정신대의 경우는 전쟁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제사, 방직 공장 등에 조선여성을 동원하여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중일전쟁이 전면전쟁으로 확대되자 일본은 각료회의를 통해 ‘국민정신 총동원령’을 내리게 된다. 이에 따라 여성의 전쟁참여가 촉진되면서 강제 동원이 행하여졌다. 소위 ‘정신대’로 불리는데 근로정신대와 종군위안부로 나뉘며 10대 후반 20대 전반의 조선여성들이 끌려갔으며 정신대 규모는 20만 명으로 조선여성이 80%를 차지한다고 추측된다.

어린 나이에 ‘흰 밥을 배불리 먹고 돈을 벌 수 있다’라는 꾐에 속아 청춘을 이국땅에서 육체적 고통과 수치심을 뒤로하고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일생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일본 대사관 앞 ‘일천 번째 수요 집회’는 그 횟수의 의미를 기억이라도 하듯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함께하였다. 깨어있는 일본의 시민들이 꿰어 조각을 맞췄다는 1000조각의 조각보(하고 싶은 말을 담아서)도 전달되었다.

정대협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미국의 6개 도시, 유럽의 14개 도시 등 42개 도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적 연대의 집회가 개최됐다고 알려졌다.

수요 집회 전날인 12일과 13일 위안부 할머니 2분이 잇달아 영면하셨다. 또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할머니들도 많다고 알려졌다. 올해에만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16분이라고 한다. 생존하신 할머니는 국내 57명, 해외에 6명 등 63명뿐이라는데 이분도 기약할 수 있는 고령으로 금년을 보내게 된다. 할머니들은 일제에 의해 행해진 치욕스러운 삶의 과거 때문에 고향에도, 가족들과도 함께 하지 못하는 쓸쓸하고 불행한 여생을 꾸려왔다.

‘1천 번째의 수요 집회의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의 전쟁 범죄 인정과 공식사과, 피해자에 대한 법적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사실 기록‘ 등을 요구하였다.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할머니들과 전쟁 책임자(가해자)인 일본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대사관 앞 평화비는 일본이 외교마찰로 유감을 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치되었다. 20년 세월 애쓴 분들에게 부끄럽고 그 세월 아무 반응 없는 뻔뻔한 일본 대사관과 정부에 화가 난다. 사실은 우리 정부에 분노가 더 치민다. 1965년 국교 수교 당시 대일 청구권 자금을 수령함으로 전쟁 배상의 문제는 끝났다는, 일본군 위안부 존재 자체를 일본이 부인하는 결과를 만든 우리 정부의 책임이 더 있다. 약소국의 비극이 아니라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의 연속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7~18일 셔틀 외교의 일환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정상 회담을 진행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다루었고 외교 의제에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작심한 듯한 발언에도 일본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청구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어야만 했다. 일본의 전쟁 책임과 종군의 위안부 인정에서 시작하는 대일 외교로 다시 시작했어야 했다.)

한국의 대일 관계는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에 적나라하다. 바람직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의 전쟁 책임 인정과 진실한 사과, 피해국에 대한 배상의 전제 없이는 그들이 허구적이지만 부르짖었던 ‘동양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 대일 외교사의 기틀을 정 조준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정서와 역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

2011년도 저물어간다. 아직도 망년회(忘年會)를 많이 얘기한다. 망년 및 망년회는 한 해를 보내며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이다. 어려운 시기(과거 배고픈 시기, 일제 치하)에 흔히 썼다. 망년회의 형식도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의 문화에서 유래됐다. ‘조선 놈은 맞아야 말을 잘 듣는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은 타율적이다’라는 원색적인 욕설에 불과한데 일제의 군국주의 정책의 문화요, 자주성을 잃고 해매는 우리 민중들에 대한 일본인의 왜곡된 언어일 뿐이다.

한해를 보내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스런 평생을 기억하자! 4년 전 서해안 기름 유출로 어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삼성도 기억하자! 굴욕적인 한. 미 FTA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하는 것은 미완의 과제일 뿐이다. 잊지 말고 기억으로 남아 2011년을 2012년의 희망으로 송년(送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