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사운영 부실대학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부실 운영이 염려된다는 대학이 무려 22개였는데, 그 중 전남 순천의 명신대와 전남 강진의 성화대가 대표적이다. 그 대학은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학점을 주고 졸업장과 자격증을 수여했는데, 그 숫자가 무려 4만 6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졸업생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취득한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등의 자격증을 갖고 이미 취업해서 일터에 있는데, 그들의 학점과 자격증이 취소된다고 하니 그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의 대부분이 만학도들 이라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좀 더 낳은 환경을 만들고자 선택한 ‘공부’의 길이었는데 일이 틀어져버린 것이다. 아무리 비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고 할지라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을 터인데 그 시간들을 그 누가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그 만학도들이 청소년이었을 당시에는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또는 손쉽게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없어서 진학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일평생 살면서 학벌을 따지게 되니 중년이 되고 장년이 된 이들에게 ‘쉬운’ 대학의 손짓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우리에게 학력이라는 것은 직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절차가 되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했든 안했든 졸업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오를 수 있는 곳과 결코 오를 수 없는 곳을 가름하는 장치가 대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갖고 있는 목적은 이미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의 획득’이라는 것으로 정리된 지 오래다. 아니, 공부는 곧 진학을 뜻한다. 그래서 상급학교의 학위를 획득하기만하면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은 너 나 할 것 없이 기능과 기술을 습득하는 마당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등록금 문제로 사회가 시끌시끌해지자 대학구조조정을 선언한 교과부가 이상한 잣대를 내밀기도 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대학 지원의 수위를 조정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잣대는 추계예술대학 등 소위 ‘예술’ 분야에까지 똑같이 적용함으로써 사회적 이슈를 키웠다. 졸업을 하고도 수년을 갈고 닦아야 대중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교과부는 몰랐을까. 이래저래 우리나라의 대학은 취업, 즉 생계유지를 유한 방법을 습득하는 곳이라는 선언을 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공부에는 그런 기능습득 외에도 중요한 부문이 함께 존재한다. 자신과 세계의 존재 이유를 고뇌하고 이 세상을 더 훌륭한 곳으로 만드는 인본적 사유에 대한 학습이 함께 해야만 한다. 즉, 존재에 대한 성찰이 공부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을 때 비로소 공부의 목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학의 목적은 유능한 변호사나 의사나 기술자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고 교양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학이 달려가는 방향은 정 방대를 향하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소시민들은 이리 채이고 저리 깨지는 것이다. 

그런 부나방같은 사회적 현상은 우리를 허탈하게 한다. 가정도 학교도 대학입시라는 문을 향해 돌진하는 돌격대가 되어버리고 그 문을 통과한 자는 그가 누구든 지식인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인사회에서 살아가는 평생 동안 우리는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사교와 친교에 크나큰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만날 때 우리의 관계에 그의 학벌은 끊임없이 자극제가 된다. 그 허상은 금방 실상이 되어 관계의 호불호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화폐와 권력의 소유를 향한 갈망에 다름 아닌데, 우리가 어떤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갔을 때 쉽게 확인된다. 처음으로 자신을 소개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직업’이다. 타인을 만났을 때도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직업’이다. 물론 그 직업이란 것은 사람의 하루 일과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기에 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업을 궁금해 하는 마음속에는 그 사람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 있어 친밀도를 결정하는 얄팍한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특히 놀라운 점은 화폐나 권력을 많이 소유한 직업일 경우에는 타인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쉽게 중심 인물이 되고, 함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데에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환호를 받는다. 동창회, 친목회, 동호회 그 어느 소모임을 들여다보아도 그렇고, 심지어 종교 단체에서도 직업은 빛을 발한다. 직업과 학벌을 묻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 어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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