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의 주역 백야 김좌진 장군의 묘비가 대표적 친일 문학가인 팔봉 김기진이 작성한 걸로 '오마이뉴스'와 '보령신문'의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팔봉 김기진은 '카프'계열의 문학가로 초기에는 박영희와 더불어 논쟁을 주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나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표적 친일 문인단체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 '조선언론보국회' 이사로 재직하면서 순회강연과 작품을 통해 적극적인 친일활동을 한 자이다.

김기진은 2009년 대통령직속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사명단에 들어있고 '민족문화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방응모, 김성수, 백낙준, 이광수, 최남선, 노천명, 김기창(화가), 현제명(작곡가)과 함께 등재됐다.

매년 연례적으로 김좌진장군의 추모제향 행사가 열리고 있음에도(올해엔 지난 22일 거행됨), 지역민이나 장군의 유족, 묘소관리 주체인 보령시관계자 누구도 비문의 작성자가 친일문학가란 사실을 모른 채 지내온 것이다.

장군의 제향일 이전인 14일 '오마이뉴스'에 제보가 전해져 비문 확인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그 전날인 13일 대천문화원에서 있었던 '우리고장바로알기' 강좌에서 보령의 향토문화와 역사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황의천 선생(서천여고 교사)이 처음 그 사실을 밝혔는데 그 강좌에 참석하신 어느 분(민족과 역사의식이 꼼꼼 한분으로 여겨지는)이 언론에 제보해 세상에 공개된 듯하다. 황 선생은 11월 19일 발간 예정인 '보령문화 20집' 에 김좌진 장군의 묘비의 글이 친일문학가 김기진의 글임을 학술적 발표의 모습으로 적시하려 했는데 여론을 통해 먼저 알려져 학술적 노력의 성과가 반감되는 서운함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뒤늦게나마 장군의 묘비가 대표적 친일작가의 글이라는 사실을 확인 했기에 우리는 새로운 계획에 착수해야한다. 지방의 향토역사학자, 역사의식을 간직한 제보자, 언론이 함께 적지 않은 역사적 역할을(계획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본연의 충실한 입장에서 기여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기회를 보령의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전기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째, 김좌진 장군 묘역의 현재의 묘비를 철거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 전투요, 빛나는 '청산리 대첩'의 주역인 김좌진 장군의 묘역에 친일의 흔적이 함께 해서야 되겠는가? 그 동안의 많은 참배객들의 뇌리엔 '김기진'도 애국자로 각인되었을 터다. 친일 고문경찰 김창룡이 대전국립묘지에 안장 된지가 엊그제인데…. 보령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 함양의 과정에서 걸림돌이 안 되게 묘비를 철거하고 다시 세우는 계획이 바로미터가 되어야 한다.

둘째, 묘비를 다시 세우되 흠결 없는 지역의 신망 있는 분의 글로 묘비의 글을 채워야 한다. 정치인이나 유력자의 글은 뜻 있는 시민들은 우습게 여긴다. 필자가 1990년경 전북 황토현(동학농민운동 전적지)에 가보니 비문의 글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글인데, 이름 석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돌에 쪼여져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80년 광주 양민학살과 군사쿠데타의 주역과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 기념비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방문객들의 뜻의 표현이다). 홍성에 있는 김좌진장군의 사당(백야사)의 글은 유력 정치인이었던 한화갑씨의 글인데 공주님이 누더기 걸친 형상으로 쯤 여겨진다. 

 셋째는, 김좌진 장군의 묘비는 너무도 당연히 보령의 돌과 보령의 글씨로 제작 되어야한다. 보령의 돌(남포오석)은 보령의 특산품이자 전국 최고의 돌이다. 남포오석은 조선시대 중·후반부터 전국에 명성을 날렸다. 찬란한 1000년의 유산 성주사지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도 남포오석으로 만들어졌다. 글씨체도 보령에는 수준 있고 전국적인 서각과 석조각공예가들이 많다. 보령의 벼루, 비석의 공예는 전국최고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서울에 가거나 웬만한 도시에 가면 '보령'이라는 상호를 앞에 한 석가공 및 석재업체가 꼭 눈에 띈다. 웅천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종사했던 석가공기술자(석공)들이 양성되어 전국에서 생업과 더불어 활약하고 있다.

넷째는, 보령시의 역사와 문화유적의 보존과 관리의 메뉴얼을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김좌진 장군의 묘비의 글이 친일작가라는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숙연해야 한다. 전문적인 문 학자가 아니어서 스쳐 지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자. 그럼에도 우리는(시민도, 유족도, 보령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주무부서는 이런 사례를 사전에 점검하는 전문성을 갖추든지 꼼꼼히 살피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결언하자면, 지역민의 숭고한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졌다는 사실 앞에 김좌진 장군의 묘비를 다시 세워야만 하는 것이 엄연한 진실이고 현실이다. 유족과 보령시, 추모사업추진위원회, 기념사업회는 장군의 묘비를 다시 세우는 계획에 착수해야 함을 강조해 본다.

 내년(2012년)에도 김좌진 장군 추모제향에서 친일작가 김기진의 글로 쓰인 장군의 묘비에 절을 올리는 결례를 범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