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본지 10월 5일자 칼럼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올바른 정착과 발 빠른 시행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심각한 자괴감을 느끼며 주민참여예산제의 올바른 정착을 바라는 시민의 뜻을 다시 한 번 담고자 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으로 표현했었다. 정치 선진국일수록 주민자치(지방자치)를 통한 주민 참여를 보장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주민참여예산제 시행을 위해서는 그 조례 성안 과정에서부터의 주민참여를 강조하는 공청회, 토론회의 필요성을 밝혔다. 한편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지난달 21일 보령시장과 의회의장을 면담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보령시에서 성안하여 공고된 주민참여예산제 조례(안)이 주민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엔 턱없이 미흡하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아울러 행안부가 제시한 모델안 (3)안을 반영하여 수정 발의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성숙된 주민자치를 원하던 시민들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13일 열린 보령시의회 임시회(자치행정 상임위)에서 애초 공고된 보령시가 발의한 조례안이 가감, 수정 없이 상정, 통과된 것이다. 다분히 예측한 결과였기에 지나친 기대를 가졌나 반문도 해본다. 당일 시민단체 회원 몇 명이 방청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의 회의 결과에 대한 실망감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주민참여 예산제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실천적으로 받아들인 관계 공무원이나 의원은 보령시에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    집행부와 의회 전체의 주민참여 예산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실천 방법(입장)에 대해 자괴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시의회 상임위원회의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나마 방청객을 의식한 탓인지 의원들의 발언이 어정쩡했고, 마지못한 의견개진으로 비추어졌다. 주민의 현안을 빠르게 살핀다고 평가받는 3선의 한의원은 주민참여 예산제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였으나 과거 자신의 의사록을 예를 들며 세부 규정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의미를 살려 나가자는 취지로 발언을 해 본질을 외면한 선심성 발언이라는 평이다. 본인이 예산 편성에서 다른 의원들보다 자유롭다고 밝힌 한 의원은 주민참여 예산제에는 찬성의 뜻을 밝히면서, 주민참여 예산제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논의체인 위원회 구조는 실비를 지급하므로 예산의 낭비라고 주장하여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었다.

평소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라고 내외에 자부하던 한 의원은 주민참여예산제하에 다룰 수 있는 예산범위의 협소함을 설명하면서(주민참여예산제의 대상은 전국 평균 대략 10%내외에 불과함) 전국의 지자체가 행안부에 주민참여제 형태의 예산편성권을 요구해야 한다고 하는 적절치 못한 비유로 주민참여 예산제를 옥상옥으로 규정해 주민참여예산제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내었다.

의견표명을 하지 않은 의원도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되자 정회를 요청한 의원의 뜻이 받아들여져(정해진 수순같이 보였다) 정회 후 속개해 원안으로 통과됐다.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무지는 몇몇 의원과 조례안의 발의 취지를 설명한 담당 공무원의 표현에서 절정을 이룬다. (시장이나 의원 및 공무원이 지역을 순회할 때 민원을 청취하여 숙원을 해결하고 인터넷이나 홈페이지로 주민의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보령시의 주민참여조례안은 시집행부와 의회에는 어느 의원의 표현처럼 옥상옥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주민참여예산제는 10%밖에 안되는 예산을 주민이 참여하여 심의, 편성함을 뜻하는데 그 마저도 예산의 편성권, 집행권을 심각히 위협당하는(?) 관료의식에 젖어있으므로...

본지가 발행되는 날(19일) 시의회 본회의에 또 다시 시민들의 방청이 예견되지만 원안대로 통과될 것이 분명하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제도의 주민참여라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주민소환, 주민투표, 조례제정)의 중요한 방법임을 의회는 깨달아야 한다. 보령시의 주민참여 예산제는 주민의 참여를 실제 가능케하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등 실천기구를 가동하지 않는 제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두루뭉수리한 제도로써는 '알맹이가 빠진 제도'요 있으나 마나한 제도다. 그나마 행안부로 부터 재정패널티를 면키 위해 법적 기한에 쫓겨 가장 쉬운 답안을 베꼈을 뿐이다.

시민단체의 요구도 묵살하고, 시민은 없는 보령시인가?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상식은 소통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령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안이 공고된 후 본지와 민·관·기업의 협의체조직인 '푸른보령 21'에서 주민참여 토론회를 계획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공개 토론회가 무산 된 바 있다. 이런 현실은 주민들에게 행복한 보령으로 여겨질까?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용의 의미)을 곡해한 것인가?

현명한 시민들은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시와 의회의 조례안 성사과정에서 '반사적 학습의' 교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주민참여의 참 미래를 개척하는 성숙한 시민들은 '오늘'을 '어제의 역사'로 똑바로 볼 것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