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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만의 시선] 부러운 촌놈
황선만 (칼럼리스트)
2011년 10월 11일 (화) 16:00:53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너 시골 내려가면 촌놈된다” 대학을 마치고 방황하던 스물 후반, 서울 생활을 뒤로 한 채 보령을 향하던 내게 선배가 던진 말이다. 숨겨두었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하기도 했고, 초라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일까. 반격하듯 툭, 하고 애맨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이 어디 가서 살든 무엇이 그리 중요하답니까? 그곳에서 정붙이고 이웃과 어우러지면 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차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올지, 프랑스 파리에 가서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말은 그렇게 호탕한 듯 내뱉었지만 당시의 쓰라린 속은 부쩌지 못했다.‘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듯이 청운의 꿈을 품고 올라갔던 서울 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세상을 향해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고개 숙인 발걸음을 건네던 그 청춘의 심사가 어떠했겠는가. 사정이야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있었지만 그 선배가 어찌 내 그 속엣 사정을 모두 알 수 있었겠는가. 설마 아주 깊이 이해한다 하여도 소맷자락을 붙잡는 것이 애정있는 선배의 도리였을 터이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청춘이란 눈에 물기를 머금게 되는 것이 세상사 아니겠는가.

세월은 흐르고 중년이란 이름표가 붙은 얼마 전, 서울 행사장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시절에 보였던 그 뜨거운 눈빛이나 재빠른 몸짓이 아닌, 약간 느릿하면서도 관조하는 기색이 역력한 녀석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가 으레 그렇듯이 가정사 이야기, 재투자 이야기, 승진 이야기 따위가 화제였다. 그러나 어찌 비애가 없으랴. 출근길 한 시간은 예사이고 두어시간 걸리는 녀석도 있었다. 회삿일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평일날 아이들 얼굴 보기가 어려운 친구들도 있었다. 주말에 있임직한 문화생활? 뮤지컬도 보고, 영화관도 찾아가고, 미술관에서 차분히 숨쉬는 여유? 쉽지 않은 일이라고 이구동성이다.

나는 내친김에 우리가 자주 어울렸던 산동네 소식을 물었다. 방값이 저렴해서 가난한 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인기가 높았던, 도깨비마을이라 불렸던 산동네 소식을 물었다. 그곳에서 부대끼던 주민들은 어디갔냐고.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등산하듯 올라야했던 마을, 나무 한 그루 여유를 주지 못한 채 시멘트로 덧칠 되어있던 그 도깨비마을은 아직 건재하단다. 주차장이 없어서  다리 한 쪽 계단에 올려놓은 사람처럼 기우뚱이 삐뚤빼뚤 주차되었던 차량들도 아직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켜서 있단다. 내 자취방 앞에 똑 같은 크기의 방 두 칸을 얻어서 살아가던 그 가족은 지금쯤 그 동네를 벗어났을까. 그렇다면 아직 건재한 그 건물에는 또 다른 어떤 가족이 들어와 살고 있을까. 푸른 꿈을 영글게 한다는 서울이라는 곳에서는 지금도 푸른 꿈들이 넘쳐나고 있을까. 88만원 세대, 8대2의 세상이 된 지금도 그 꿈들은 유효한 것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자리가 깊어지자 시골에 사는 내가 부럽다는 녀석들이 나타났다. 빌딩숲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이 가고 싶단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출근시간 10분도 채 안 걸리는 내 생활이었다. 교통체증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도로에서 마냥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개미가 줄지어 굴속으로 들어가듯 출퇴근길에 지하철로 줄지어 들어가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이 연상되었다. 삶의 한 귀퉁이를 돌아서 뒤돌아보니 그랬나보다. 작지만 평온하고 느릿한 시간 속에서 몸을 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들의 진정한 소망이고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헬렌 니어링의 책이 있다. 20세기 중반에 세계를 누비며 뉴욕커로 살아가던 한 젊은 부부가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땅에 뿌리박은 삶이 얼마나 충만한 삶이 될 수 있는지, 자연과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말해준다. 97년에 국내에 소개되어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귀농과 귀향의 바람이 무척 활발해진 것은. 우리도 이제 시골이 꿈이 되고 있다. 지방이 희망이 되고 있는 시대를 걷고 있는 것이다.

새 영화가 전국 동시개봉 된지도 오래고, 서울 나들이도 무척 손쉬워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어떤 정보든 저 숲 속에서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마을 보령문예회관에서도 굵직굵직한 공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특히 10여분 거리에 바다와 숲길이 항상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촌놈의 시대는 지났다. 아니, 촌놈이 부러운 시대가 되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당대 도시인들의 소망은 대체로 시골에 가 닿는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골에는 많기 때문이다. 보령에 사는 것이 자랑이요, 가슴 뿌듯해 할 때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있다. 더 큰 빌딩을 부러워 말자. 물질이 아닌 마음의 문화, 정서의 문화를 함께 가꾸는 일이다. 우리는 부러운 촌놈이다.

※ 사외(社外)기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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