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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장신문 주최 제1회 산문 백일장 대회 일반부 대상 작
2011년 10월 11일 (화) 15:52:00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인동초꽃에 대한 기억.

<차 정 선 作>

   
순 청양 토박이인 내가 보령에서 근무를 한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보령이라고 하면 여름 한철 바닷가에 와서 놀다 간 기억이 전부였던 터라 다소 생소 한 고장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한번 보려와 닿은 인연이 계소 이어져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 소심한 성격도 한 몫을 했지만, 적잖은 나이에 시작한 학교생활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가시방석인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해졌다.
점심시간 급식실을 나서며 학교 주변을 기웃거리며 짧은 산책을 하는 날도 생겼다.
 보령이라고 하면 바다를 연상하기가 쉽지만 막상 지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 고향 청양 산골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숲이 친근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학교 옆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오른 적이 있다. 잡목이 우거져 있어 조심하면서 둘러보니 원추리꽃 몇 송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그 덤불 숲 어딘가에서가 낯익은 어떤 꽃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호기심에 몇 번 두리번거리다가 서둘러 내려가는 겁 많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
인동초다. 인동초꽃들이 덩굴마다 흐드러지게 핀 걸 발견하고 나는 그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고향 산골짜기에서는 흔히 봤지만 어른이 된 뒤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인동초꽃을 여기 보령 땅 작은 학교 뒷산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인동초꽃은 내게 아주 특별하면서도 소중한 추억의 꽃이기에 그 반가움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는 인동초라는 이름을 몰라 그냥 ‘꽃’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께서 ‘그 꽃잎’을 말려 약으로 쓰신다며 가끔 따오셔서 말리곤 하셨는데 그걸 보고 나도 그대로 따라했다.
하교 길에 온갖 해찰을 부려가며 오다가도 인동초꽃만 보이면 한 움큼이라도 따서 뒤꼍 장항아리 뚜껑 위에 넣어 두었다.
내가 말린 그 꽃잎이 실제 약으로 쓰였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도 꽤 오랫동안 나는 인동초꽃만 보면 따고 싶어 손이 닿지 않는 덤불 속 깊은 곳까지 욕심내며 발을 동동 거렸다.
그때 어린 나는 알았을까?
향긋한 꽃 덤불 속에서 동동거리던 그 하찮은 몸짓들이 20년도 훨씬 넘은 지금 이런 그리움이 될 줄을.
 대학 시절 ‘그 꽃’의 이름을 알고 싶어 창고 열람실에 들어가 속에 메슥거릴 때까지 식물도감을 들춰내어 ‘인동초’라는 이름 석자를 드디어 알아냈다.
겨울에도 그 이파리가 시들지 않고 푸르게 남아 있어 인동초라고 했다던가.
그러면서도 인동초꽃 특유의 그윽한 향내가 그리워 대신 몇 권 사둔 식물도감만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뿐인가. 시골 장터거리에서 우연히 인동초 덩굴을 화분에 심어 파는 걸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두 개나 덜컥 사버린 일도 있다.
집에 놓아 둘 곳이 없어 화단이 있는 어머니댁에 옮겨 심어놓고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는데도 막상 피고 보니 금색, 은색의 야생꽃이 아니라 진한 자줏빛이 도는 개량된 꽃이었다.
내 기억속의 인동꽃은 이렇게 화려하지도 요염하지도 안았는데 그 실망감이 말할 수 없었다. 어쩐지 아쉽고 허전해서 열적게 식물도감만 뒤적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내 그리움의 결정체인 인동초꽃을 보령의 바닷가 근처 야트막한 뒷산에서 발견한 것이다. 갓난애 손마냥 작고 여린 꽃잎을 몇 개 뜯어 향기를 맡으니 내 기억 속 오랜 감각이 일제히 깨어나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래 전 돌아가시고 안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나고 이제는 돌이 킬 수 없는 내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 그렁그렁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깟 야생화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 그래도 나는 힘주어 이야기 하고 싶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물질적인면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면의 문제라고 말이다.
내 마음을 언제나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이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지탱해 준 원동력이 되었노라고 자부한다.
 나는 아마 내일도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뒷산 주변을, 가을 들꽃 주변을 서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고요한 기쁨으로 내 에너지를 충전해서 보령에서의 하루 일과를 마칠 것이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끝 어딘가에 지금은 지고 없어진지 오래일 인동초꽃 향기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실려 내 고향 산골짜기까지 가서 맴돌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 바람들이 섞여 내년이면 또 다시 인동초꽃이 피고 내가 어디에 있든 그 그리움의 향기가 전해질 것으로 굳게 믿는다.


*고등부 대상작품과 최우수상 작품은 다음주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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