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이 차고 넘치도록 선물꾸러미를 한아름 안고 형을 만나러 가려고 했었다는 김영화씨. 취미인 기타를 치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저희가 9남매입니다. 그 중 두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영렬이 형까지 7명이 생존해 있죠. 이 쪽에는 육 남매가 살고 있습니다. 형을 만나러 갈 때는 총 5명만 가야 한다기에, 한 명 빠지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죠. 꼭 만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설레었는데….”
남포가 고향인 김영화(70세, 명천동)·김영휘(63세, 대창초등학교 교장)씨, 그리고 다른 지역에 살고는 있지만 형제자매들인 영목·영효·영수·영흔씨 등 육남매는 지난 달 27일 정말 설레이고, 기쁜 소식을 접했다. 바로 남북적십자사가 제6차 이산가족 금강산 순차 상봉 북측 후보자 2백명에 형이며 오빠인 김영렬(71세)씨가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56년 전 의용군으로 입대 후 헤어져 생사를 몰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영렬씨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연락은 이들에게, 그 어느 것에 견줄 수 없는 기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리움에 더해 복받치는 설움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벅찬 마음으로 남한쪽 맏형이었던 영화씨는 지난 3일 형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할 방문단 신청을 했고, 11일 최종 명단 100인에 선정되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정말 꿈같은 날이었어요.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잘 살고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죠.”
그러나 그런 기쁜 마음으로 56년의 한을 애써 감추었던 이들 가족들은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고, 그토록 보고싶었던 北 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는 데에 실망감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형은 군산중(6학년)시절 미군 통역으로 일할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北형 영렬씨.
군산중에 재학중 6.25가 발발하고 대지주의 아들로 고향에 돌아가면 죽는다는 헛소문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의용군에 입대 후, 얼마 전까지 소식을 모른 채 가족들은 살아왔었다.
“저도 형을 만나기 위해 의용군에 입대했었어요. 하지만 만날 수 없었고, 저는 곧바로 탈출했죠. 그 때 같이 왔더라면, 이렇게 긴 이별은 없었을 것을…, 하지만 그 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위안을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동생 영화씨는 형 영렬씨에 대해 우리 지역출신의 김용환국회의원, 김원기 전 남포면장 등과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였으며 “그 분들도 만나지는 못하지만, 살아있다는 소식에 아주 기뻐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2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양친은 생전에 “영렬이가 돌아오면 함께 밥을 먹겠다”며 밥그릇을 항시 올려 놓았었다고 애잔한 마음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그토록 그리던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신 부모님에게 저희들이라도 만나서 그 마음을 대신 전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조규광초대헌법재판소장의 외사촌 형제인 영화씨는 5년 전까지 서울지방법원 인사과에 근무했었다. 이 후 고향이 그리워 귀향해 부인 최정석(58세)씨와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다른 동생들도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 노년의 모습입니다. 형은 어릴 때 헤어졌지만 함께 군산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저를 잘 돌봐주었기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형님의 얼굴이 생생합니다.
그 동안 이산가족 상봉장면이 방송될 때마다 혹시나 형님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고, 그러던 중 이번에는 기회가 왔구나 확신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명단에서 빠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음 기회가 너무 멀지만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겠죠”
영화씨를 포함한 형제자매들은 영렬씨를 만나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함께 살 수 없어도 건강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살자’ ‘곧 자주 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말을 말이다.
56년여의 긴 세월보다 요 며칠이 너무 길었다는 영화씨 가족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음 방문 기회를 기다리겠다는 이들의 바람이 꼭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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