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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책익는마을 이야기⑦우리시대의 청소년이여
황선만(책익는마을 전 촌장)
2011년 03월 02일 (수) 10:23:2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돌아온 홍세화 선생에게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다. 어떤 여고생이 임신을 했다고 한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긴급 가족회의가 열렸다. 당사자인 여고생이 호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상대 남학생도 한 자리에 앉았다. 엄중한 꾸지람이 이어졌고 두 학생은 크게 혼쭐이 났다. 그리고 심도 있는 가족회의가 이어졌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두 학생을 결혼시키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그들은 부부 고등학생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상황을 2011년 대한민국으로 가져온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아마도 결혼에 이르기 까지는 고사하고 두 학생은 문제아로 사방에 낙인이 찍힐 것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성년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에 막대한 지장을 입게 될 것이다. 홍세화 선생이 언급했던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유일한 이야기가 아니란다. 그 나라 청소년들의 생활 속에서는 간혹 만나게 되는 일이라고 한다.

무례하고 버릇없는 일이지 않은가. 감히 청소년들이 말이다. 내 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놀랍고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한 번 더 돌이켜보자. 불과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만해도 결혼이란 스무살 전후에 이루어졌지 않은가. 아니, 우리민족의 오천년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지금처럼 결혼 적령기가 늦춰진 것은 길게 잡아야 오육십년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 아니,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짐은 무엇이던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영교시 논란 속의 학교에 등교하고, 하교 후에는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학원버스에 올라타고 학원에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밤 12시 이후 학원수업 금지니, 10시 이후 금지니 하는 논란이 거세겠는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국영수 중심의 입시공부다. 청소년기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지 않는 학생은 이미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루 12시간 이상씩 밑줄 긋는 내용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그렇게 공부하고 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서 아름다운 인간세상을 만드는 데 얼마나 큰 몫을 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그들이 밑줄 긋는 내용에서는 개인의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탐구나 인류나 인생을 향한 깊은 고뇌를 만나기 어렵다. 자신이 이웃과 함께 만들어갈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진솔한 토론을 경험하기 어렵다. 이름 하여 입시지옥, 학벌중심 사회다. 그 관문을 통과한 자 만이 환영받고 칭찬받는 사회, 국영수 성적이라는 단일한 평가기준을 자랑하는 우리시대 청소년들의 사회다. 이 시대 어른들이 걸어오면서 통탄했던 그 길이 이제는 더욱 다져져서 튼튼한 성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년 전에 깜짝 놀랄일이 일어났다. 여고생들 6명이 독서토론을 하고 싶다며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그 갈망을 학교에서 풀어주지 못하자 물어물어 우리 책익는마을을 찾아나선 것이었다. 우리는 대 환영을 했고 그들에게 매달 책을 선물해주고 있다. 물론 책 선정을 학생들이 토의해서 하고 있으며 우리는 책값만 지불하는 형식이다. 독서토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기에 우리 마을에서 담당자를 파견하고 있다. 그 담당자는 토론에 끼어들어 가르치기보다는 원활한 진행을 돕는 보조자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

여고생들의 숫자가 8명으로 늘어난 지난해 가을에는 중학생들도 찾아와서 매달 책 두 권 씩을 읽고 있으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회원중에 재무를 맡은 어떤 이는 “매달 나가는 책값이 장난이 아니야.”하면서 웃움짓기도 하는데 참으로 흐믓하고 즐겁다. 스스로 모여 함께 토론을 배우고 책 한 권을 집중해서 읽고 정리해대는 청소년들, 그들이 만들어갈 대한민국 사회는 다를 것이다. 개별성이 존중받으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를 만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여 아무리 입시가 중요해도 책을 읽을 지어다. 그 속에 당신들의 미래, 우리 시대의 꿈이 담겨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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