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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책익는마을 이야기⑥ 어떤 책을 읽을까
황선만(책익는마을)
2011년 02월 15일 (화) 12:33:29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책 한 권 읽기 힘든게 우리네 일상이지만 세상은 내 일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뛰어가나 보다. 간혹 대형서점에 가보면 맵시 있게 디자인한 새책들이 어찌나 많은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수 백 평은 될 듯싶은 저 매장에 가득한 책들을 누군가는 읽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괜시리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책 한 권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와 큰 결단일 필요한 일이다. 

아니, 그렇지만은 않다. 고민하지 않고 특정한 진열대를 찾아가서는 별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드는 사람도 있다. 으레히 자신이 찾는 부류의 서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분야는 거들떠 볼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 관심분야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갸륵한 일이랴. 그렇게라도 책을 만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얼마나 기특한 일이던가.  

내 20대의 독서가 그랬다. 나는 철학이나 문학 관련 서적을 즐겨 읽었는데 과학이나 주류경제학, 자기개발서 따위의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따라서 서점에 들어가면 책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제법 많은 서적을 탐독하게 된 어느 날, 참으로 가소로운 관점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주류경제학이나 자기개발서 따위의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친구들을 가여운 듯이 바라보는 것 아닌가.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참여문학이나 맑시즘 관련 철학 서적이 아니라 감성적인 에세이집이나 칸트, 니체 등의 서적을 손에 든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쯧쯧쯧’ 하는 버릇을 오랫동안 지니고 살았었다. 

책익는마을을 만나 제법 독서와 친숙해진 회원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이 책은 쉽다”거나 “저 책은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간혹 지나칠 정도로 아카데믹한 책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쓰여진 책을 읽게 되기 때문에 그 말은 많은 어폐를 갖고 있다. 대체로 바른 독서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인사회로 진입한 우리들은 독서를 스스로 배워가야 했고 그런 만큼 수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한가 보다. 책과 비교적 가깝다는 사람들도 결국 자기가 선호하는 분야의 책이 있어서 다른 분야의 책을 만나면 우선 마음으로 경계를 하곤 한다. 마음을 주지 않으니 그 책이 선뜻 내게 다가올리 만무한 것이다. 어떤 이는 그 책 내용과 관련한 기초 지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중요치 않다. 어차피 대중을 상대로 나온 책이니 마음으로 멀리하는 선입견을 버리고 시작할 일이다. 

책익는마을은 도서 선정과 관련한 묘수를 갖고 있다. 그게 바로 책 선물이다. 당번이 된 사람이 홀로 선택한 책을 선물해주면 다른 사람은 의무적으로 읽는 것인데 처음엔 고통을 호소하곤 하지만 일정한 과정이 지나면 모두들 행복해한다. 조금 더 지나면 나도 당번이 될 터이고 그 때가 되면 다른 이들에게 고통아닌 고통을 주게 된다. 한동안 낯선 책과 씨름하다보면 놀랍게도 무릎을 탁, 치면서 “바로 이거였어!” 하는 희열을 느끼게 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래서 우리 마을에 유명한 말이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샀다면 결코 이 책은 사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낯선 분야, 낯선 내용의 책을 읽는 맛, 바로 그 속에 독서의 묘미가 있다. 내 생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지난주에는 매월하는 정기 독토가 있었다. 여섯 모둠이니 책 여섯권이 선정되어 각 모둠별로 밑줄그으며 책을 읽고 만났다. 가브리엘의『제국의 몰락』, 장하준의『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최두석의『임진강』, 박종기의『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 장 지글러의『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등의 책을 읽었다. 당번이 던져준 이 책들은 회원들 각자에게 세상은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주었고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옷깃을 여미게 만들어 주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무슨 책이면 어떤가. 책 속에는 저자의 고뇌어린 숨결이 살아있거늘. 그리하여 독서란 그 책을 읽는 우리가 다시 해석해서 마음으로 다시 책을 쓰는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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