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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횡설종설
2011년 02월 15일 (화) 12:25:41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만찬(晩餐)보다는 저녁이, 오찬(午餐)보다는 점심, 조찬(朝餐)보다는 아침이 훨씬 운치 있지 않나요. 허긴 운치가 어떻고 는 ‘아니올씨다’의 세월 한 복판입니다.

건강하십쇼 로 새해 인사드립니다. 늦었습니다. 언제인들 편할까 입니다만 그건 당신이 선택한 길이니 어쩌겠습니까. 마음으로 다지고 몸으로 풀어가는 그 자리, 그런 자리라고 다 압니다. 말 한마디에 뽑히지 않던 <전봇대>가 순식간에 뽑히지 않던가요. 그래 그게 ‘힘’이어서, 영광된 자리라고 돌려 책임지우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 벌써 3년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지금은 구제역(口蹄疫)에 조류(鳥類) 인푸뤤자로 몇 백만 마리가 생으로 땅속에 묻히고 있습니다. 그런 지금, 헌법 고치자는 당위(當爲?)가 구제역을 또 생매장합니다. 그런가 했더니 또  ‘여기 충청 추가요’입니다. <국제 과학 비즈니스 벨트>인가 뭔가 입니다.  

그런 적 없다고 합니다. 거기가 충청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충청은 벌써 3년전에 귀도 안 들리고 눈도 보이지 않는 청맹과니었습니다. 안 했다는 그 말에 숨은 수(數)탓 이려니 로 잠시 돌아앉아 못 본 척입니다. 허공에 주먹을 앞세운 핫바지, 그도 못하고 애꿎은 놋재떨이만 처대는 여기, 거기가 옛도 지금도 충청입니다. 변함없는 변치 않는 여전한 멍청, 자괴(自愧)의 충청입니다. 자리 하나 내 주면 바로 주먹 내릴 멍청, 그 핫바지들이 있음을 탓하는 키 재기가 한창인 여기 충청은 아직은 제 밥그릇 챙기기가 힘겹습니다, 충청입니다.      황금분할의 대 역사를 이뤘다고, 절묘한 충청의 선택이라고 ‘아닌충청’이 충청을 일컫기도 했던 그곳입니다. 이녁은 거기,  그런 여기로 가슴 펴 보인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지요. 거기 취해 자리 못 잡은 세월이 오늘입니다. 멍청하게 보냈습니다. 오년마다 사년마다 한 번씩 속이고 속는 되돌림입니다. 그래서 오년 내내, 사년 내내 핫바지만 입혀주고, 입는 것만도 웬 떡이냐고 감지덕지입니다. 그러니 세월을 이리 보내지요.   

흔히 우린,  “당신 의 마음이신걸 -”,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부모님을 ‘당신’으로 3인칭화합니다. 부모님 뫼시고(앞에서) ‘당신’이라고 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안 계실 때 부모님을 부르는 자식의 마음겸손입니다. 다 압니다. ‘당신’이 부모인 것을. 내가 언제 ‘당신’을 ‘당신’이랬지 부모 랬느냐, 한적 없다면 말 받은 이는 멍청이가 됩니다. 이런 멍청이로, 아무렇게 내 질러도 되는 ‘것’으로,  충청은(?) 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땐 잘못했다, 조금이란 토를 달았지만 그랬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치고 빠지기, 안되니 대타(代打) 내세웠습니다. 이것도 작정이었는지 입니다. 시간벌기 말입니다. 더 정확이면 ‘사대강 대리전’에 핫바지 들러리, 그도 불안했는지 만만한 다른 멍청이로 샅바채우기, 이런 게 시간 보내기 로드맵이었나, 겨우 이즈음의 생각입니다.

근데 또 입니다. 과학비즈니스벨트, 또 삼년전. 과학이 사이언스여야 어간균형(語間均衡) 일텐데 는 뵈지도 않았습니다. 충청이란 말이 왜 빠졌느냐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준다는 한마디에 한달음에 앞뒤 안 봤습니다. 허겁지겁 찍었지요. 그래놓곤 이런 일은 지금 띠 두르고 약속지키라며 소리 지르는 분들의 소관이었다고 슬며시 뒷짐인 핫바지들입니다. (내친김에 가 봅니다) 높은 자리 하나 준다면,  ‘그런 적 없다’고 총대 메고 줄 설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곤 시간 벌어준 공로로 한자리 꿰 찬다는 그럴만한 시나리오를 써 봅니다. 세월 까먹는 핫바지와 멍청이의 일기입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씻나락 까먹는 소리, 다 거짓말의 우회(迂廻)입니다. 그 닭장이 여깁니다.  여기가 거깁니다, 삼년 지난 이,  이 이가 아니고 딴이였었다면.  다른 선택의 상상, 엉뚱함입니다. 입만 뻥긋하면 거짓말이 ‘되어지는 충청’이어서입니다. 오죽하면 입니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으로 입니다.  헌법 고치는 일말입니다. 헐어서 새것으로 재건축 한다는 건지, 리모델링으로인지는 남의 논에 물대깁니다. 국과비(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행복이라 줄였었음에)에 개헌이 덮칩니다. 어느 게 진짠지 가늠이 안됩니다. 국과비를 치기 위한 개헌인지, 개헌을 치기 위한 국과비인지, 동(東)이 거기면 서(西)는 어딘지, 그런데도 서(西)는 개헌으로 찍힙니다. 국과비는 충청에 해도 고만, 안 해도 고만 이어서 일겁니다. 남은 이년, 오리 뒤태 안 보이려는 건 인간적입니다. 이년 뒤를 보장 받으려는 속내면 오년이 찜찜해서 일거라는 짐작뿐입니다.  

웃기는 얘기, ‘바지사장’이란 말도 있지요. 이 ‘바지’, 아무래도 좋게 사용된 것 같지 않지요. 그렇네요. 유흥업소등에서 곧잘 써 먹는 ‘바지’입니다.  그 바지, ‘행복‘때 핫바지의 멍청을 탓하며 ‘사대강 대리전’에 투입된 그 바지, 시간 벌어준 공적(?)에 많은 핫바지를 볼모로 조금 높인 멍청이로의 깔창에 기어이 한자리 얻어 꿰차네요. ‘멍청의 끈기’입니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무대접입니다. 이게 오늘의 핫바지로 멍청하게 천선(遷善)한 꼴입니다. 언제부턴지 핫바지가 멍청하다는 그 멍청함의 ‘청’이 충청의 청과 맞먹는 조합으로 멍청도가 되는 순열(順列)입니다. 충청입니다. 충청이었습니다, 그땐 ‘행복‘이 세종이 되어지는 진통이었습니다. 오늘도 핫바지는 국과비를 걸고 멍청한 한판 또 겨뤄야합니다. 천상 또 개헌대리전에 내 몰릴 것 같네요. ‘아닌 충청‘도 소모성 다툼이라면서도 거듭니다. 한적 없다고 하는, 충청이라고 한적 없다는 당신에게서 우린 침침한 앞 이년을 보게 됩니다. 그걸 어쩌지도 못하구요. 겨우, 개헌이면 구제역 막아질까? 입니다.

구제역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헌법으로 고치겠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여러분’은 그런 약속 한적 없다는 징표가 될 꼬리표입니다. 가로로 세로로 왔다갔다였습니다.

권 용 세
(thewalnu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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