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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책익는마을 이야기⑤찾아오는 사람들, 밀물이 되다
황선만(책익는마을 전 촌장)
2011년 01월 28일 (금) 18:05:42 보령신문 webmaster@charmnews.co.kr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차 한 잔 놓고서 사내 서너 명이 둘러앉아 뭐가 그렇게 좋다고 수다를 떨었는지 말이다. 우리들의 독서토론은 보통 두 시간 가량 진행이 됐는데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허리도 뻐근하고 입도 말라가면서 이젠 몸이 궁싯거리기 시작하면 서둘러 종료를 선언해야 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일랑 뒤풀이로 자리를 옮겨서 나누자는 말과 함께. 그렇게라도 제어하지 않는다면 사내들의 수다는 언제 멈출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차가운 술 한 잔 없는데 중년의 사내들이 모여 앉아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들을 놀라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모두가 직장인들이니 한 낮의 피로감에 쉴 자리를 찾아야 할 밤 시간인데 어찌하여 그토록 즐겁게 보낼 수 있었을까. 게다가 자리를 파하고 늦은 밤 귀가를 하면 어찌 그리 마음이 포근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이 서서히 주술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독토날이 다가오면 애인과의 약속시간을 기다릴 때처럼 몸이 달뜨게 되었다. 그 후 우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독서토론 하는 날’ 이라고.

  말이 그렇지 생활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독서토론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활에 바쁘고 찌든 일상인들에게 ‘독서토론’이라는 것은 너무도 멀고 낯선 일이 아니던가. 듣기에 따라서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줄 수도 있고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처음엔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몇 몇 사내들만의 그 좋던 보금자리는 종언을 고한 것이다. 이제 더 풍부하고 다양한 수다가 시작된 것이다.

  어쩌다 은포리나 해망산 앞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보면 그랬었다. 서툰 손짓이 좀 익숙해지는가 싶어서 휘파람을 불면서 호미질을 하다보면 밀물이다. 어찌나 빠른지 멈칫거릴 여유가 없다. 특히 밤에 갯벌에 나가면 밀물을 조심해야만 한다. 욕심내다보면 방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책익는마을에 새로운 마을주민들이 들어오는 속도가 그렇게 밀물 같았다.

  열 명이 되고 열다섯 명이 되더니 어느새 또 다른 주민들이 전입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그 오붓하던 수다는 강력한 제약을 받게 되고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메바처럼 분화가 필요해졌고 정회원 기준 여덟 명이 되면 우리는 두 모둠으로 분화하는 지혜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여섯 모둠이 각각의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A팀은 조만간 또 분화할 태세다. 마을이 커지면서 촌장이 생기더니 작은 마을이 많아지니 반장도 생겼다. 그렇게 책이 익어가는 우리 마을에는 자꾸만 새로운 무늬가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무늬 속에서 진정한 빛을 밝히고 있는 색채가 있으니 마을 주민들이다. 너무나 다양한 직업과 나이를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한 만남이다. 더구나 여타의 동호회와 달리 우리 마을 사람들 수다의 주제는 한 없이 많다. 문명, 자연, 시, 소설, 미술, 철학, 영화, 정치, 경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주제가 널뛰기 하듯이 펄쩍펄쩍 다가온다. 선정도서에 따라서 주제는 불현듯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주제가 주어지면 마을 주민들은 진지하게 다가간다. 책 한 권은각각의 주제를 품고 있고, 그 책을 읽고 풀어내는 이야기란 책이 던진 주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은 책을 읽어도 직업이나 나이에 따라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니 그 감칠맛을 무엇과 비교하랴. 우리들의 수다는 그래서 진정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밀물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세상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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