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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책익는마을 이야기-①
책을 선물하다
2010년 12월 21일 (화) 22:16:01 황선만 책익는마을 촌장 webmaster@charmnews.co.kr
   
행사장이란 곳이 으레 그렇듯이 뷔페에서 진행된 그날의 행사장도 다소 지루한 의식행사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의자 소리는 고사하고 옷깃을 여미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다. 어쩌면 마음들은 이미 저 병풍 너머에서 모락모락 수증기를 풍기고 있는 저녁 식탁에 가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해진 선로를 따라 이동하는 완행열차처럼 진행되는 의식행사장의 보고와 축하와 감사 자리에서 청중이 되는 일은 대게 주체도 객체도 아닌 어정쩡한 일이다.

하마터면 밀려오는 졸음에 고개를 꾸벅 할 뻔 했는데 의식행사를 마친다는 사회자의 선언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옆 자리에 앉았던 분이 불쑥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 분도 나처럼 이 순간을 기다렸는가 보다.

“제가 읽어 봤는데 재미있어서 한 권 더 샀어요.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보셔요.”

책을 받아보니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제목이 크게 써있고 제법 두툼했다. 책 차례를 살펴보았더니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는 요충지로서의 한반도가 고구려 이래 어떻게 존재해왔는지를 분석하면서 새로 다가올 시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끼악,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터운 책을 게다가 따분하기 이를 데 없을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읽는단 말인가.

아침에 출근하면 퇴근시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신문을 펼쳐들 시간 조차 없이 생활하고 있는데 말이다. 퇴근 후에도 업무와 연관된 사람들을 만나 밤늦도록 지내다가 술에 취해 귀가해서는 잠자리에 들기 바쁜데 말이다. 간혹 계모임에서 친구들을 만나지만 누군가가 고상한 문화 이야기를 할라치면 반향이 없으니 겸연쩍어지고, 정치 이야기를 할라치면 격앙되고 거친 언사가 서로의 소통을 끈어버리니 그 또한 멀찌기 달아난지 오래 아니던가.

그저 어느 동네 부동산 가격이 어떻다거나 요즘은 재테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따위의 돈 이야기를 해야만 서로의 눈빛이 모아지지 않던가. 아! 때로는 스포츠 이야기도 나눈다. 누구는 배드민턴을 선수처럼 잘 치는가하면 누군가는 야구에 빠져서 휴일을 반납하고 있다고 그런다. 돈을 잘 벌어서 경제적 여유가 좀 생긴 한 친구는 요즘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을 반짝인다. 하지만 나도 야구 너도 야구, 나도 골프 너도 골프가 아니다보니 길게 이어지지 못하기 일쑤다.

학창시절을 벗어나 10여 년 생활전선 속으로 뛰어든 결과가 이런 자화상을 만든 것이다. 알베르 까뮈를 읽고 인간의 부조리를 논하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우리네 사회를 염려하던 청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핸드폰과 승용차와 돈벌이라는 마술에 사로잡혀 생활 속으로 들어간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책과 두터운 담을 쌓고 있었던 것 아닌가.

선물받은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부쩌지 못하던 나는 짐짓 평온한 채 가장하고 ‘이 책을 읽고 다음 달에 만나 이 책 이야기를 나줘보자’고 제안했다. 사실은 그렇게하지 않는 다면 내가 그 책을 재미있게 읽어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의 숙제가 주어졌고 숙제인만큼 거뜬히 읽을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두터운 책을 밑줄 그으며 읽는다는 것이 대체 얼마만 이었던가. 난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 책 선물이 없었다면 역시 똑같은 한 달을 밤낮없이 허겁지겁 보냈을 것이다. 책이 주어졌다고해서 갑자기 내게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에 느꼈던 그 희열은 어떤 유쾌한 술자리에서도 어떤 신나는 영화 관람 후에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약속한 자리에 가면서 나는 권하고 싶은 책 두 권을 사들고 갔다.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나도 책 한 권 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2006년 여름에 시작된 그 책 선물은 지금까지 매달 이어졌고 그 소문이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떠돌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50여 명이 책익는마을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책을 선물하고 선물받고 있다. 또한 그 자리는 모두가 주체가 되고 진정으로 진지해질 수 있으니 따스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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