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잃은 것만도 슬픈 데 초등학생의 형제들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면 어떨까? 최근 보령의 한 일가족에게 닥친 일이다.

보령에 거주하는 A씨(70세)는 어느 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소장을 송달받았다. 태어나서 난생처음 받아보는 소장이었고, 그 내용을 알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A씨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풍족하진 않지만 단란하게 살아오다 10년 전에 갑작스런 사고로 막내아들을  잃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후 2007년에는 남편이,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첫째 아들마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다.

그렇게 연달아 가족들을 떠난 보낸 슬픔도 잠시, 2009년에 사망한 첫째 아들의 대출금을 갚으라며 채무자인 아들과 보증을 선 남편의 상속인들. 바로 A씨의 가족들에게 소송이 제기된 것.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고아원에 있는 A씨의 손자들이었다. 이제 막 13살, 12살인 형제는 7년 전에 이미 친어머니가 가출하여 그 행방도 알 수 없었고,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보령의 한 고아원으로 가게 됐다.

A씨는 주변의 권유로 대한법률구조공단 보령지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공단 보령지소의 김학무 법무관과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이들 가족을 돕기로 했다. 관할도 서울, 인천, 홍성으로 원칙적으로는 이송결정을 통해 사건을 서울과 인천 등으로 보내야 했지만 안타까운 사연의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적극적으로 소송구조에 나섰다.

먼저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답변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변론기일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홍성지원에 A씨를 비롯한 두 딸들의 한정승인심판청구를, 인천지방법원에는 두 손자들의 친모에 대한 친권상실심판청구 및 홍성지원에 특별대리인선임심판청구, 한정승인심판청구를 신청해 결국 법원으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모두 얻어냈고, 이들 가족들은 망자의 채무로부터 모두 자유로워 졌다.

사건을 담당했던 김학무 법무관은 “사건을 진행하면서 판사님들 또한 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에 공감하시고, 특히 고아원에 있을 아이들을 많이 걱정해 주셨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지소 식구들이나 판사님들도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채무를 승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각자 최선을 다했다”면서 앞으로 이들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특히 형제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그 소회를 밝혔다.

※ 한정승인심판청구란?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많은 경우 상속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상속채무를 변제토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