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과 신용제도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목돈마련과 금융이용 수단으로  서민들 사이에 사설 금융계(이하 ‘계’라 한다)가 유행했었다. 이제 첨단 금융시스템이 도입되고, 계의 위험성이 알려져 사라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종종 깨진(해지 및 파기)계에 관한 상담요청이 있다. 보령지역에 이런 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계는 통상 번호계(또는 순번계, 이하 번호계라 한다)와 낙찰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계가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하고 깨진 경우 계주의 책임과 계금반환에 관한 법률문제가 복잡하다. 

번호계는 계를 설립 및 유지관리 하는 계주(또는 계장, 이하 계주라 한다)의 주도 하에, 계원들이 일정 시기에 곗돈을 갹출하여 정해진 시기마다 순번에 따라 계원에게 계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면서 조직되고, 계주가 유지관리 책임을 진다. 번호계가 깨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규약(또는 회칙)이 있다면 그것에 따르고, 규약이 없다면 계원들이 약정할 수 있겠지만,  약정도 없는 경우라면 민법의 조합계약(민법 제703조 이하)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따라서 번호계가 깨진 경우 계원들은 청산절차를 거쳐 계금수령자와 미수령자 사이의 채권 및 채무관계를 확정해야 한다. 이런 청산절차가 있기 전에는 각 계원들이 단독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만일 번호계의 계주가 계원들로부터 거둔 곗돈을 써버리고, 계금을 지급하지 않아 계가 깨진 것이라면, 계원들에 대하여 업무상 횡령죄가 될 것이다.  

낙찰계는 약정한 곗돈을 계원들로부터 갹출해 만들어 놓고, 입찰에 참여한 계원 중 가져갈 액수를 가장 적게 적어낸 사람이 계를 타는 형태로, 번호계와 달리 계주가 자기 개인사업으로 계를 조직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금과 곗돈 등의 계산관계는 오직 계주와 각 계원 사이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계가 깨진 경우에 계주는 낙찰금의 교부와 계금 반환 등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청산이 필요한 경우에는 최소한 계주와 아직 낙찰 받지 못한 계원들과 합의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고, 그들의 동의가 없는 한 계주가 계를 일방적으로 해산할 수 없다. 계주가 거둔 곗돈을 임의로 써버리고, 계금을 지급하지 않아 계가 깨진 것이라면, 계원들에 대하여 업무상 배임죄가 될 것이다. 계주의 형사책임은 계주 개인의 위와 같은 범죄행위가 있는 경우에 한하고, 계금을 수령한 계원이 곗돈을 내지 않아 계가 깨지는 경우에는 계주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계가 운영되는 실제의 모습들을 보면 매우 허술한데, 계를 빙자한 사기 사건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계주와 계원의 신분과 신용이 확실하지 않다면, 계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선행 법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