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이 땅을 열었습니다. 단군님을 내렸습니다. 하늘이 우릴 택하셨습니다. 그러신지 4343년입니다.
우리가 그런 이 땅,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완연한 거기에 점지되어 살아 온지 만4342년이 됐습니다. 그런 우린 지금 어디만큼 와 있을까,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들은 얼마만큼 일까, 혹시 살기 바빠 나이마저 잊은 건 아닌지, 별로 도움이 안 돼 일부러 모른 척 하는 일상은 아녔는지 괜시리 부끄러워집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현판일 뿐이어서 입니다.

시월이 오면 이 땅 곳곳은 잔치로 풍장이 밤 늦음도 마다하고 꽹과립니다. 국군의 날도 있습니다. 노인의 날, 세계한인의 날, 재향군인의 날, 한글날, 임산부의 날, 체육의 날, 문화의 날,경찰의 날, 유엔데이, 저축의 날, 교정의 날이 거의 하루걸러 입니다. 학교 동문 체육대회도 만발입니다. 그런 시월에 우린 하늘이 열린 날을 정했습니다. 개천절, 그 날, 시월삼일입니다.

우린, 좀 오래됐을 얘깁니다. 반만년 역사에서 이천삼백삼십삼을 빼면 서기(西紀)가 된다고 배웁니다. 이제 오늘의 우린 서기에다 이천삼백삼십삼을 보태면 단기(檀紀)가 된다고 가르치기나 할는지 입니다.  하긴 단기를, 서기를 말하고 표기하는 어른도 아이도, 심지어 가르치는 선생님도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올해는 하필 일요일이어서인지 세계대백제전은 보여도 시월삼일은 겨우 도덕이 누더기(?)인 신임총리입니다.

새벽이면 우린 아침신문을 받습니다. 첫면 신문이름 오른쪽을 보면 고딕체로 오늘이 며칠인지를 알려주는 큰 글자의 숫자가 있습니다. 서기입니다. 그 근처에 마지못해 표기한 듯한, 본문보다 작게, 그것마저 친절하게도 단기임을 단서 하며 일면(一面) 뿐입니다. 묘령이라며 처녀 나이 슬쩍 흘리듯 말입니다.  거래로 치고, 단기와 서기의 신문표기가 공정하지 않다는 정도로 물러섭니다.

난지 일 년이면 돌잔치로 대소가가 들썩합니다. 부모 생신엔 밥 한 끼라도 같이 하자며 오랜만에 얼굴들 봅니다. 용채라며 봉투 내미는 효자효녀도 있습니다. 생일은 그렇게 유다르고 기쁜 날이어서 그냥 우린 보내지 못합니다. 연년세세 생일이면 우린 잊지 않고 그날을 더 없는 날로 축하합니다. 물려줄 밭 때기가 없어도, 집 한 칸이 안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린.

걸핏하면 ‘글로벌’인 우리네라지만 우리네 말까지 뒷켠인 ‘세계화’가 원망이면 힘없어서 일테니 이 아니 서러움일까요. 한참은 ‘팩트’가 어떠니, 그게 ‘펀다멘탈’ 이라느니 하는 경제쪽 나으리들의 서슴없는 유식이 ‘프렌들리’로 절정입니다. ‘엠 오 유’로, 급기야 우린, 보편적 자아상실의 경지에 몰입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도 말입니다.   

케이워터, 케이에프디에이, 엘에이취, 엔에이취, 엔피에스, 케이티엑스, 코레일, 케이티엔지, 케이디아이, 이게 다가 아닌 우리는 <수자원공사>가, <식약청>이, ‘K-Water’이고 ‘KFDA’가 되어지는 그들만의 편리한 발상이 참!! 부러울 뿐입니다.  하긴 창씨개명도 해 봤는데 이쯤이야 이면 그땐 ‘글로벌’이 아니고 ‘내선일체’였을 꺼, 그렇게도 고리 꿰어 봅니다.  이거, 한글날까지도 총리가 대역을 해 심란함에 괜한 트집 부린 건 아닌지 입니다.  내년 생일잔치엔 평소 아주 자주 뵙던 대통령님을 주빈으로 뫼시고 ‘하늘 열림’을 같이 축하하는 그 날이 되었으면 입니다.  생일 맞은 동네가 좀스럽게 이런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개천절>, 그 흔한 ‘재조명’쯤 도 있음직한데 그마저 없어, 하는 넋두리입니다. 작년에는 너무 쓸쓸했다고 기억되는 내년이었으면 하는 소망 한쪽입니다.

그러니 이런 생각도 들지요. 혹시나 이기도 하구요. 단기를 쓰면 세련돼 보이지 않을까봐, 그래 굳이 세련돼 보이고 싶다면, 그렇다면 쓰지 마십시오. 단기를 쓰면 고집불통으로 보일 것 같아, 그렇게 보이는 게 싫으시면 안쓰면 되구요.  서기에 또 단기를 쓰기가 귀찮아서, 그럼 안 귀찮을 때 만 쓰십시오. 다들 쓰지 않으니 나도 이면 아예 잊으십시오. 이렇게 단기로 말씨름 해보는 오늘입니다. 단군(檀君)은 알아도 왕검(王儉)이 붙으면 단기마저도 가물 한 오늘입니다. 

부모 생신도 챙기지 못하는 우리가, 보이지 않아 실체가 없는 ‘하늘이 열려 - ’를 기억, 그걸 축하하려는 또 다른 우리가 같이 사는 여긴 혼돈으로 우리마저 잊었습니다. 설날도 있고 추석도 있어 민족 대이동이란 용어가 넘치고 사월 초파일엔 온 누리에 목탁이, 크리스마스엔 바보상자(?)가 며칠을 두고 들썩여도 우리의 ‘하늘 열린 날’ <개천절>은 대통령 대신 총리의 대본 읽기로 끝인 여긴, 조용한 아침의 나라 우리입니다.

해선 벌을 받는 법을 이렇게 하면 피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는 우리, 남들도 다 하니 나도 한거니 괜찮은줄 알았다고,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쳐 주는 우리, 잘못 저지르고 그걸 한참 지난 뒤에 발각되면 잘못했다고, 조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말하면 잘못이 아닌, 세금 시침 뗀 거 알아 버렸으니 내겠다고 하면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우리, 그와 그리고 나, 그런 우린 참 희한한 동행들입니다.

태어남을 모른척하는 불효일까요 아님 그 자체를 부정하는 망나니일까요. 그래서일까요, 원정출산으로 병역면제를 미리 준비하고 부모가 공직자, 교수이면 성골인지 진골인지로 사람됨을 급수로 매겨 놓으려는 우린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섬찟합니다.  여기에 병역이, 탈세가, 위장전입이, 도덕이, 관행이어도 “하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데, 그걸 어떻고는 구차하네요. 언제쯤 우린 이 구질구질한 우릴 떨칠 수 있을지,  올해도 시월삼일, 구일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권 용 세(thewalnut@hanmail.net)